[머니위크]시련의 현대아산, 안갯속 금강산관광
때로 예기치 못한 일들이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주부였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남편이었던 고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런 자살 때문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기업의 명운도 마찬가지다. 북한군의 총격에 금강산 관광객이 맞아 사망하는 뜻밖의 사고로 자칫 현대아산과 현대그룹의 미래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이런 때일수록 키를 잡은 선장의 역할이 중요한 법이다.

◆현정은 회장 또 하나의 시련
사실 현 회장은 취임 때부터 위기가 아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남편의 죽음부터가 위기의 시작이었고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경영권 공격,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한 금강산관광 침체 등 시련은 끊임없이 계속 돼 왔다.
그 모든 일들을 방어하고 수습했더니 이제는 관광객 피살이라는 돌발악재가 터졌다. 그동안의 대북사업에서 발생했던 악재들이 남북간의 정치적 관계로 인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관광사업 자체에 내재한 신변안전 문제가 부각됐다는 점에서 다르다.
여기에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남북의 대화 채널이 없어진 관계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쉽지 않다. 관광객 피살이 남북간의 정치문제로 비화된 상황에서 현대아산이라는 민간기업이 할 수 있는 한계도 명확하게 존재한다.
정부는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금강산 관광을 잠정 중단시켰고 북한이 남북한의 공동 진상조사를 거부하면서 금강산 관광의 재개여부와 시기도 불투명하다. 통일부에서는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개성관광 중단 검토설까지 나오고 있다.
1998년 금강호 출항을 시작으로 현대아산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한지 올해로 10년, '함께한 10년,함께 할 100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피치를 올려가던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지도 모를 상황에 처해 있다.
◆현대아산, 하루 3억원 매출 손실
귀책사유가 북한의 과잉대응이었던 현대아산의 안전 관리 미비였던 간에 현대아산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대목은 이번 사고가 모처럼 금강산관광이 활기를 띠어가고 있는 찰나에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금강산관광은 올 상반기에 당초 목표보다 20% 가량 많은 19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최대 호황을 맞았다. 2006년도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금강산 관광 침체와 구조조정의 기억은 옛일이 돼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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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아산은 7월10일 해수욕장을 개장하고 7월 말~8월 초 비로봉을 개방하면서 관광분위기를 고조시킨 뒤 이 여세를 9월~10월 단풍철까지 몰고 가 관광객 45만명 목표를 이뤄보겠다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그러나 관광 중단으로 현대아산은 당장 하루 3억원 이상의 매출 손실을 입게 됐다. "7월 들어 하루 평균 1000여명 이상이 금강산을 찾았으므로 1인당 평균 관광비용을 30만원으로 잡을 경우 이 같은 계산이 가능하다"는 게 현대아산측 설명이다.
지난해 2555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현대아산은 관광사업에서 전체 매출의 45%를 올려 왔다. 특히 관광사업 중 금강산 관광비중이 70% 정도여서 장기화될 경우 기업 존립도 위태로울 수 있다. 최대의 성수기에 최악의 상황을 맞은 셈이다.
◆현 회장 담담한 위기관리
이번 사고를 접한 현회장과 그룹은 비교적 차분하고 담담하게 위기관리를 하고 있다. 시숙과 시동생과의 두 차례의 경영권 분쟁, 대북사업 위기 등을 거치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사실 현 회장은 금강산 관광객이 피격 사망되는 사고가 없었다면 지난17일에 개성에 있을 예정이었다. 개성공단 내에 문을 여는 평양식당 개소식에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 등을 비롯한 그룹 경영진들과 함께 참석할 계획을 세웠던 것.
그러나 현 회장은 개성에 가지 못하고 서울 적선동 본사 사옥에서 비상대책회의를 주재해야 했다. 관광객 피격 사망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사고 수습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금강산관광 중단 이후 그룹의 경영방향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사고 이후 현 회장은 고 박왕자씨를 조문하고 유족들을 위로한 뒤 "대북사업을 계속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비상상황에 대처하느라 다소 수척해지긴 했지만 현 회장의 표정에서 당황하거나 초조한 빛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룹 관계자는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퇴진과 핵문제 문제로 악화된 북측과의 관계를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통해 풀어가는 등 현 회장이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상당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그룹 5년 연속 흑자 기조 이어간다
현대아산이 영업정지에 해당하는 '금강산 관광중단' 상황을 맞았지만 현대그룹의 전반적인 경영상황은 고유가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다. 그룹측은 5년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주력 계열사인현대상선(20,150원 ▼200 -0.98%)은 1분기에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1.6% 늘어난 1조6020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도 198.4% 늘어난 1728억원을 올렸다. 2분기에 고유가로 인한 영향이 있다고 해도 무난한 실적이 예상된다.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6월26일 한 신용평가사가 장기 신용등급을 'A'로 상향조정했다. 승강기를 중심으로 한 주요 사업부문에서 시장지위가 강화되고 있고 현대상선, 현대증권 등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의 실적개선이 반영됐다.
현대증권은 올 1월~3월 영업이익과 순익이 적자를 기록했지만 2008 회계연도 1분기인 4월~6월 실적은 흑자전환이 예상된다. CJ투자증권은 현대증권은 당기순익 482억원을 기록해 흑자전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9조5260억원의 매출과 677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취임 이후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뒀고 올해에도 매출 11조원과 5년 연속 흑자 달성을 위한 항해를 계속 하고 있다.
◆"그룹 흔들리는 일 없을 것"
시련이 있을 때마다 오뚜기처럼 일어서는 현 회장을 두고 '뚝심경영'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현 회장은 사실 '뚝심'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투박하고 남성적인 어감을 주는데다 단순히 뚝심만으로 일을 풀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대그룹 규모의 그룹이 5년 동안 뚝심만으로 버틸 수는 없는 법이다. 고비 고비 마다 현 회장이 현명한 판단을 하고 그룹의 역량을 결집시켰기 때문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현 회장은 이번 사고가 난 뒤 "차분히 대응하고 조기에 원만히 타결되면 현대건설 M&A 등을 비롯해 그룹 차원에서 진행 중인 사업 일정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 관계자는 "처음부터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은 이윤을 남기겠다는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았다"며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에 차질이 생긴다고 해서 그룹이 흔들리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