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신용증권 담보 확대' 실효성 논란
-은행권, "전산 등 인프라 없이 실효성 없다"
-대출확대 조치에 전자어음 사실상 제외
-전자어음 활성화에 역행하는 조치
-초고속 인터넷 시대에 '286 방식' 도입(?)
"시중은행들이 '007가방'을 들고 한국은행을 찾는 풍경이 벌어지게 됐다. 설익은 정책을 내놓은 탓이다."(A은행 관계자)
"언제는 전자어음을 활성화하라고 하더니 이제는 종이어음 거래를 확대하라는 말이냐."(B은행 관계자)
한국은행이 오는 9일부터 시중은행에 대한 대출(주로 총액한도대출)시 기존 국공채 외에 잔존 만기 1년 이내의 약속어음과 환어음 등 신용증권도 담보로 받는다. 지난달 22일 금융통화위원회가 결정한 것이다. 정작 은행권은 이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상당수 은행은 이 제도를 활용할지를 놓고 고심 중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1000억원을 대출받기 위해 장당 수천만원에서 1억~2억원짜리 어음 수천장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 본점이 아닌 지점에서 어음을 보관하거나 지방센터에서 나눠 관리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번거로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은행권은 최근 한은과 진행한 2차례 설명회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어음 실물을 한은에 보여준 뒤 확인증을 받고 이를 다시 가져와 관리하는 인력을 따로 보강해야 한다"며 "전산처리가 안되면 사실상 이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관련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아 '286시대'처럼 완전 수작업에 의존해야 한다.
한은 관계자는 "국공채는 직접 실물에 질권을 설정해 예탁원에서 보관한다"며 "이에 반해 어음은 질권 설정을 할 수 없어 실물을 확인한 뒤 해당 은행에 보관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약속어음 등 신용증권은 신용도가 국채나 통안증권에 비해 크게 떨어져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실물을 확인해야 한다는 논리다. 국민은행은 실물이 있는 할인어음대출은 7864억원에 불과하나 외상매출채권대출은 2조5830억원에 달한다. 신한은행은 각각 2조6000억원으로 같고 하나은행은 1조1200억원, 1조6500억원으로 외상매출채권대출이 더 많다. 기업은행은 지난해말 현재 할인어음은 4조2642억원, 외상매출채권대출은 2조2418억원이다.
특히 정부의 독려로 발행이 크게 늘어난 전자어음은 이번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어음 발행규모는 총 7만4349건, 4조5676억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39.7%, 86.5%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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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관계자는 "전자어음도 담보로 인정해줘야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려는 당초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전자어음은 실물이 없을 뿐 아니라 통상 만기가 1개월 이하로 매우 짧다"며 "은행 측도 복잡한 절차 등으로 전자어음을 담보로 한 대출을 꺼리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행 한은법상 문헌증권만을 유가증권으로 인정한다"며 "앞으로 전자어음 급증에 대비해 전산화 등 관련 제도 및 인프라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은행 관계자는 "거래 투명화를 내세우며 전자어음을 활성화하라고 하더니 이번 조치는 이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할 일 많은 금통위 위원들이 이처럼 실효성 없는 정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느냐"며 "보다 시장친화적인 정책에 대한 관심을 높일 때"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