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압구정동을 아시아 영어 허브로

강남역·압구정동을 아시아 영어 허브로

김지민 기자
2009.03.31 09:55

['한국식 사교육' 수출하자]

한국학생들이 굳이 미국에 갈 필요없이 한국에서 미국 명문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는 없을까. 아시아학생들이 한국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하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터무니없는 상상같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공부하겠다며 미국으로 떠난 유학생의 상당수가 영어를 공부하러 방학이면 역으로 한국을 찾는다.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과 대학원입학자격시험(GRE) 등 각종 영어시험만큼은 한국의 학원교육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다는 경험 때문이다. 또 이미 적지 않은 아시아학생이 한국대학에서 공부한다. 이 아시아학생들이 한국 영어학원에서 각종 영어 자격시험을 공부하는 것이 꿈같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외국 명문대학 유치 절실=이란에서 온 아진씨(25)는 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 서울에 있는 H대학 학부생으로 다시 입학했다. 그는 "요즘처럼 경기가 어렵고 달러가치도 비쌀 때 미국이나 영국으로 유학가는 것은 비용부담이 너무 크다"며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이득"이라고 말했다. 또 "요즘은 한국대학에서도 영어로 수업하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는데 불편이 없다"고 말했다.

 비영어권 국가의 학생들이 한국에 머물러 영어를 공부할 수 있도록 하려면 외국의 명문대학 유치가 절실하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한국의 여건이 다른 나라보다 특별히 좋은 편은 아니어서 외국대학을 유치하는데 힘든 점이 있다"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외국대학들이 많이 들어와 한국대학과 함께 발전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의 여건은 열악하다. 현재 정부가 유치한 외국대학은 광양경제자유구역에 위치한 네덜란드 국제물류대학원 1곳뿐이다. 앞으로 외국대학 유치와 관련한 계획이 잡혀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좀더 적극적인 외국대학 유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남역·압구정동을 아시아 영어허브로=서울 B대학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중국인 선화선씨(27)는 학교에서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학원에서는 영어를 배우며 2개 언어를 정복해나가고 있다. 선씨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학원에서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회화반에서 공부한다.

 종로구에 있는 영어학원 성인반 강사인 김민정씨는 "많지는 않지만 한국에 공부하러 온 중국인이나 동남아권 유학생들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을 찾는 경우가 예전보다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어를 배우러 단기 어학연수를 온 유학생이나 한국대학에서 공부하는 비영어권 학생들이 한국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는 사례를 확산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다. 특히 영어회화 위주의 학원이 많은 서울 종로구와 토플, SAT, GRE, 미국 경영대학원 입학시험(GMAT) 등 시험영어로 전문화한 학원이 밀집한 강남역 및 압구정동 일대를 아시아의 영어허브로 육성한다면 쏠쏠한 외화벌이 산업이 될 수 있다.

 다만 필리핀이나 싱가포르처럼 대규모 단기 영어연수생을 한국에 유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동남아국가 학생이라면 필리핀이나 싱가포르처럼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가까운 곳을 놔두고 비용이 만만치 않은 한국에 와서 영어를 공부하려 하지는 않을 것같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이나 대만학생들을 대상으로 상품을 개발하는 방법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규모 영어연수생을 유치하려면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도 문제다. 한 인터넷여행사 팀장은 "수업 후 학생들의 사생활을 관리·감독해야 하는데 이 역할을 여행사가 하면 단가가 너무 높아져 상품가치가 없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놀리기 아까운 영어마을을 활용하자=영어 사용 환경이 완벽하게 갖춰진 영어마을을 활성화해 아시아학생들을 유치하는 것은 어떨까. 영어마을은 경기 파주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21곳이 운영되고 있으며 2011년까지 2080억원이 더 투자돼 23곳이 추가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영어마을의 적자규모는 212억4500만원에 달한다. 대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면서 교육프로그램 등이 수요자를 충족하지 못한 측면이 있고 국내학생만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려운 점도 있다.

 이에 따라 영어마을을 적자투성이로 놀리지 말고 주변 아시아학생들을 유치해 영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도 경험할 수 있도록 키우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경기영어마을에는 싱가포르 러시아 등에서 영어와 한국문화를 함께 체험하려는 학생들이 종종 단체로 예약을 해온다.

 서울 강동구가 운영하는 영어체험센터의 김성애 이사도 "2006년 대만교육청에서 영어마을에 자국 학생들을 보내겠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영어마을은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고 원어민 교사들이 영어를 가르쳐주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지원한다면 아시아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해외수요를 끌어모으기 위해선 그만큼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현재 한국학생들조차 오지 않는 분위기에서 외국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러 오겠느냐"며 "경쟁력 있고 지속가능한 교육프로그램과 콘텐츠 확보가 선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영어마을은 대개 지자체가 예산을 지원해 운영하는데 이를 전문적인 민간 영어학원이나 사교육업체에 맡겨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상당수의 영어마을이 교육콘텐츠의 질을 높이고 운영을 효율화하기 위해 민간위탁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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