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N 세상 그리고 우리는]
'그는 또 수많은 뜰을 건너가야 한다. 그 많은 뜰을 다 지났다 해도 새로운 계단을 만나게 되고, 다시 뜰을 지나고 또 다시 다른 궁전을 만나게 된다. 끝없이 몇 백 년, 몇 천 년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황제가 파견한 사절은 결코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권력의 고독을 다룬 프란츠 카프카의 <황제의 메시지>에 나오는 ‘그곳’은 바로 자금성입니다. 8백 여 개의 건축물과 9천 여 개의 방이 있는 곳. 10m에 이르는 높은 성벽과 50m 너비의 거대한 해자로 에워싸인 그곳을 보며 옛 중국의 ‘잘나가던 한 때’가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내가 이 미로 같은 자금성을 찾아간 주변 약소국의 사신이었다면... 셀 수 없이 많은 정원과 문을 통과하면서 그 웅장함에 기가 죽어 거의 혼이 나갈 정도였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황제 앞에 선 각국 사절들은 ‘황제 찬양의 합창’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몇세기가 지난 지금,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중원으로 진입하는 중국의 기세가 또 다시 느껴집니다. 한 때 중원을 장악했던 미국은 안방에 난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고, 유럽과 일본은 옆 에서 밀려온 거센 불길을 잡느라 온 나라가 야단법석입니다.
그런데 중국을 보십시오. 중환자실에 가있는 미국, 중상에 끙끙대는 유럽, 일본과 달리 경상을 싸맨 채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이 같은 힘은 세계적 디플레의 영향을 제일 적게 받고 있는 경제의 기초체력과 2조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이 가진 미국 내 자산만 1조 4천억 달러에 달해 미국의 숨통을 죄고 있는 형상입니다.
얼마 전 런던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담의 뒷얘깁니다. 당초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의제 중 하나로 환경과 그린에너지 문제를 넣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화석연료를 많이 쓰고 있는 중국의 반대로 아예 환경문제는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대신 중국은 반보호 무역주의를 밀어부쳐 주요 의제로 관철시켰습니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지난해 12월, 중국의 항의를 무릅쓰고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만나는 과용을 보였던 그가 런던 정상회의 때는 예정에 없이 후진타오 숙소를 찾아가 티벳이 중국이 영토임을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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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더 모양새가 우습습니다.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뭘 잘 모르고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고 호기 있게 얘기했다가 나중에는 슬며시 꼬리를 내렸습니다. 중국은 한 술 더 떠 세계기축통화를 미국 달러화에서 IMF의 SDR로 바꾸자고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중국의 기세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번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의 체면이 크게 구겨지면서 정부 주도의 점진적 경제개혁을 주축으로 한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이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간판을 달고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이 자금성 앞에서 “헬로우 차이나”를 합창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중국경제가 미국 대신 세계를 이끌 새로운 기관차가 될 수 있을까?란 문젭니다. 최근 타임지는 ‘중국 경제가 세계를 구할 수 있나?’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는데요. 대답은 부정적이었습니다.
중국의 호전되고 있는 소비와 대출 지표가 일시적 경기부양에 의존한 것이어서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 타임지의 진단입니다. 본질적으로는 수출회복이 가시화되지 않는 한 중국경기가 생기를 찾기 어려울 것이고 이 과정에서 수입이 증가세로 돌아서야 다른 나라 경제의 회생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었습니다. 미국의 질시어린 시선이 섞인 글일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설득력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 이웃나라인 중국의 ‘대국굴기’ 어떻게 봐야 할까요?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란 책을 쓴 배기찬씨의 섬뜻한 경고를 소개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합니다.
“중국은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기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세계의 선두에 서지 못하고 거대한 중국에 의존해 살아가는 순간 역사의 게임은 끝난다. 우리의 명줄을 중국에 의존하는 순간 코리아의 운명은 조선 후기로 되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