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금융은 국토 곳곳을 흐르는 강줄기와 같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됐다.
물이 너무 말라도 문제다. 농업용수는 물론 식수, 산업용수 모두 난리가 난다. 강물이 넘쳐도 곤란하다. 여기 저기 재난이 발생한다. 수확의 기대를 송두리째 앗아가고 하루아침에 생활의 터전이 사라져 버린다. 더 심각한 상황은 이 강물이 국토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행세를 할 때 일어난다. 둑이 터져 통제되지 않은 물줄기가 휩쓸면 남는 건 산업에, 가정에, 농토에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뿐이다. 강물은 유유자적 하게 흐르며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농민의 꿈이 영글게 논과 밭을 적셔 주고 가정과 산업에 ‘생명수’를 대주면 충분한 것 아닐까?
이번 글로벌 위기의 원인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과잉금융의 역습’이 아닐까 한다. 금융은 실물경제의 흐름을 지원하는 혈맥의 역할이 일차적 기능이다.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하고 유가증권 시장에 투자자금을 모아 기업으로 흘러들어가는 파이프라인을 열어주는 일 같은 거 말이다.
금융이 실물경제의 ‘파트너’라는 역할에 머물지 않고 자체의 성장 논리를 확장해 간 건 지난 1986년 영국의 금융서비스법 제정, 즉 금융 빅뱅이 일어나면서부터다. 제조업이 맥을 잃은 영국은 금융을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빅뱅 조치를 앞세워 미국 월스트리트의 위치를 위협했다. 규제를 풀어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금융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금융중상주의’의 국제적 쟁탈전에 일본, 홍콩, 싱가포르, 호주 등이 가세하고 마침내 미국은 지난 1999년 은행과 증권 사이에 칸막이를 뒀던 글래스스티걸 법을 없애는 ‘역사적 조치’를 단행한다. 대신 은행과 증권이 ‘한 지붕 두 가족’이 되는 것을 허용하는 금융서비스 현대화법을 제정한다. 리스크 관리 대신 ‘위험한 성장’을 선택한 것이다.
이후 규제의 고삐가 약해진 금융 산업은 각국 정부의 적극적 지원 사격과 과잉 유동성 등 토양 위에서 리스크 자체를 상품화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첨단상품으로 포장된 파생상품, 자산유동화 증권, 금융공학의 자기 확장적 발전 등으로 ‘리스크 있는 곳에 상품 있다’는 유희가 금융의 큰 줄기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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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계의 황제로 ‘칭송’받던 그린스펀이 파생상품은 시장에서 위험을 안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부터 떠안을 능력과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 이전시키는 뛰어난 수단이라고 예찬했을 정도였으니까. 언제 곪아 터질지 모를 버블을 키우고 있는데도... 월 스트리트에서 발원된 버블은 ‘메인 스트리트’로 확산되며 마침내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게 된 것이다. 이게 지금 전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프랑켄쉬타인의 괴물’, ‘과잉금융의 후폭풍’이다. 그린스펀이 자신의 오류를 인정했지만 이미 ‘강물’은 거대한 노도로 변해 전 세계를 초토화시킨 상황이다.
한국 금융산업은 어떤가? 선진 금융산업에 대한 열등감은 심화돼 왔지만 다행히 아직은 전통적 업종 간 테두리를 허물지 않고 무모한 리스크를 상업화하는 정도로 까진 가지 않았다. 97년의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한국 금융산업은 본질적으로 실물경제의 성장을 돕는 ‘혈맥’ 역할에 충실했다. 관치 금융이 핵심적 문제가 될 정도로 특정 성장산업에 대한 정책금융 공급, 대기업 돈줄의 중점 관리 등 실물의 흐름과 맥을 같이 했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우리의 시각도 경제의 금융화를 지향하는 세계적 맥락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GDP에서 제조업 비중이 12%로 쪼그라든 반면 금융 비중이 25%로 올라선 미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 취약한 제조업 기반에도 불구하고 금융강국의 위세를 떨친 영국을 우리가 ‘역할 모델’(Role Model)로 삼아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금융허브, 자본시장 통합법의 바탕에 깔려 있는 생각은 우리도 영미식 금융산업 모델을 따라가자는 것 아니었던가? 투자은행도 키우고 파생상품 시장도 꽃피우게 하고...
황당한 일은 우리가 ‘한 수’ 배우려 했던 ‘선배국가’들이 이번에 그 치부를 다 드러냈다는 점이다. 시장 실패냐 정부 실패냐를 따지기 전에 금융에 더 깊게 발을 담가 금융이 실물에서 괴리된 나라일수록 ‘금융버블’의 깊은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고 있는 대전환점이다. ‘자율 금융’이 자기 정화 기능을 갖지 못한 채 독성을 키워온 현실을 모두 교훈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4월 런던에 모인 20개 국가의 정상들은 금융 감독과 규제를 강화하자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금융 빅뱅을 선도했던 영국은 이젠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한 상태에서 은행, 보험, 헤지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 산업 전반을 촘촘히 관리해나가기 위한 ‘터너보고서’ 발표를 시발로 ‘규제 빅뱅’을 실행에 옮길 태세다. 세계 금융시장의 시계는 이미 ‘시장만능주의’에서 강력한 정부개입이 수반되는 ‘관민혼합체제’로 변신이 본격화되고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강화된 금융규제의 대세에 동참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2009년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 아니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렇게 따라잡고자 했던 선진국 금융산업이 혼비백산 중일 때 기존 정책을 일관되게, 강력하게 밀고나가 선진국을 추격하는 발판으로 삼자는 주장도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선진국과 달리 한국 금융산업은 규제 덩어리이어서 아직은 규제 개혁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이 여기에 그친다면 이번 위기가 던져주는 ‘엄중한 경고’를 읽어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금융허브를 꿈꾸며 경제의 빗장을 활짝 열어 오다 ‘추락의 길’로 들어선 아일랜드와 두바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적어도 금융산업 발전의 청사진을 원점에서 다시 따져보거나 크게 손질하기 위한 공론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위력을 보인 ‘과잉금융’의 리스크를 외면하거나 보지 못하고 초가삼간이 다 탄 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악수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으로서 금융의 성장과 ‘과잉금융의 폭발적 부작용’을 막을 규제, 이 두 가지의 균형을 절묘하게 잡아나가는 혜안이 새로운 금융정책에 녹아들어야 한다.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관점이 유사한 두 명의 말을 소개한다. “은행업은 번영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번영의 산물일 뿐입니다. 은행업 덕분에 우리가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자이기 때문에 은행업이 있는 것입니다.”(1904년 영국 식민성 장관 조셉 체임벌린) “앞으로 올 미국경제의 변화는 월스트리트에 몰리는 총명한 젊은 인재수의 수가 점점 줄고 실제로 물건을 만들어 수출하는 엔지니어, 과학자, 혁신가들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2009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 금융산업은 물론 한국 경제의 진로와 관련해서 곰곰이 되새겨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