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광팬' 이팔성·정운찬의 체험야구론

'40년 광팬' 이팔성·정운찬의 체험야구론

배성민 기자
2009.06.10 08:43

[머니위크]야구를 사랑한 CEO와 석학

데이터의 총합이자 조화의 스포츠로 꼽히는 야구에 대한 무한 애정을 표하는 CEO와 석학이 있다. 그들은 비행기를 타는 몇시간 전에도 야구장을 찾아 스타플레이어의 홈런과 빼어난 투구에 열광한다.

수백명의 경쟁을 뚫고 임원이 되고 CEO의 자리에 오르게 된 데는 야구로부터 배운 교훈이 자리한다. 또 야구 때문에 학위 취득이 늦어지기도 하고 야구에 대한 애정으로 가문의 영광이라며 야구 해설가로 나서기도 한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그들이 바로 공인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야구 마니아다.

◆'신인 선수(행원)서 감독까지' 이팔성 회장

이팔성 회장은 지난 5월 중순 우리금융지주의 기업설명회 등을 위해 미국 뉴욕 등을 방문했다. 최근 금융환경이 나아진데 따른 우리금융지주의 호전된 상황을 알리기 위함이었고 해외 투자가들의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며칠간의 여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는 날, 이 회장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뉴욕의 야구장이었다. 사석에서 그는 네댓 시간의 여유가 있자 주저 없이 야구장을 택했다고 말했다.

관중들의 환호,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까지 들려올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 딱 하는 경쾌한 타격 소리를 뉴욕의 마지막 일정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는 비행기 탑승 시간이 빡빡해 6회까지밖에 못 본 것을 아쉬워했지만 뉴욕 양키스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홈런 장면은 놓치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사학의 명문이자 야구 명가인 고려대 출신이기도 하지만 이 회장의 야구사랑은 자신의 첫 직장이자 현재의 직장인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에 대한 애정과 맞닿아 있다.

그가 1967년 대학졸업 후 들어간 곳은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수송동지점장과 남대문지점장, 영업부장 등을 거친 대표적인 영업통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이 자신의 이력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야구 명가 한일은행의 전통이다. 1960, 70년대 한일은행은, 1세대 야구 영웅들과 국민 스포츠로 불렸던 고교 야구의 스타들이 성인이 돼 너나없이 밟고자 했고 빼어난 활약을 펼쳤던 팀이었다.

김영덕 선수(전 OB, 삼성, 한화 감독)가 두차례의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던 곳도, 코끼리라는 별명의 김응룡 선수(전 해태, 삼성 감독)가 아시아의 홈런왕으로 홈런을 쏘아 올리던 팀도 한일은행이었다. 강병철 선수(전 롯데, 한화 감독)와 WBC(월드베이스볼 클래식)의 영웅으로 국민감독 칭호까지 얻었던 김인식 선수가 나란히 뛰었던 팀도 한일은행이다.

이 회장은 이들과 한일은행 야구팀에 대한 자랑을 할 때는 막힘이 없다. 그는 야구의 매력을 이렇게 소개한다. “스타플레이어만큼 야구를 빛나게 하는 것은 팀워크인데 그건 은행이나 야구팀이나 똑같다. 감독이 중요한 것도 어느 조직이나 비슷하다.”

뛰어난 학력이나 조건을 갖춘 은행원뿐만 아니라 많은 예금을 따내고 숱한 기업을 고객으로 만든 은행원을 많이 봐 왔다는 이 회장은 그 능력을 꽃피울 수 있게 하는 것은 야구로 치면 감독에 해당하는 관리자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주자가 한명도 없을 때는 홈런을 쳐도 한 점에 그치지만, 주자 만루일 때 단타를 쳐도 두 점이 들어오는 차이를 설파하는 것이다. 또 주자가 한두명 있을 때는 상대가 실책을 하거나 번트를 대도 한 점이 들어올 수 있는데 이는 협업과 팀워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 회장의 지론이다.

감독이 선수들의 기술 지도와 작전 등 모든 것을 챙기기 보다는 코치들과 고참급 선수들에게 적절하게 책임을 넘기고 관리하는 역할에 충실하면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도 은행 지점과 회사 전체에 두루 적용되는 이 회장의 철학이다.

◆'석학이 된 까까머리 야구팬' 정운찬 교수

2년째 프로야구 개막전(두산 경기)에 해설가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대쓰요'(‘됐어요’의 경상도 사투리로 한-일전 당시 역전에 성공하면서 허구연 위원이 많이 써 유행어가 됐다)의 국민 해설가 허구연도 아니고 '야구 몰라요'의 하일성도 아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현 경제학부 교수)이 바로 그다. 정 전 총장은 지난해 3월30일 두산-히어로즈전 때 해설위원으로 데뷔했고 올해는 지난 4월 4일 두산-기아전을 해설했다.

1958년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초청경기에서 야구를 처음 접한 그는 야구가 가난했던 까까머리 학생 시절과 외로운 유학생 시절을 견디게 해준 원동력이었다고 회고한다. 입주 과외를 해야 했던 대학 시절 그에게 피같은 돈(8번의 장학금)을 건네준 곳도 당시 OB맥주 박두병 사장이 회장으로 있던 상대 총동창회였고 그 인연으로 두산의 팬이 됐다.

1970년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정 전 총장은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교수 시절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와 메츠 경기를 200경기나 봤을 만큼 야구 사랑이 각별하다. '뉴욕 타임스' 야구기사를 보며 정보를 얻었다는 정 전 총장은 야구 때문에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 취득이 1년 늦어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야구 때문에 손해를 본 것만은 아니다. 교수(컬럼비아대) 임용 과정에서 그는 '야구'의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1975년 교수 임용 면접에서 가벼운 대화로 야구에 대한 지식을 질문받자 그는 2시간 이상 베이스볼 마니아임을 과시했다. 야구 이야기로 긴장을 푼 그는 경제학에도 남다른 식견을 선보였고 결국 교수 자리를 따낼 수 있었다.

귀국해서도 야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정 전 총장은 서울대 야구부가 200전(199패1무)만에 공식대회 첫 승리를 거둘 때인 2004년 9월 총장으로 재직 중이었고 야구부원들에게 승리턱을 내는 영광도 거머쥘 수 있었다.

9회 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 상황에서도 승부를 단정할 수 없고, 팀플레이를 하면서도 개인 기록과 팀 성적이 나오는 것도 야구의 매력으로 꼽는 그다.

"학생을 가르치는 신분이어서 앞으로 해설을 더 하긴 힘들 것”이라는 정 전 총장이지만 녹색 잔디와 흰공, 강속구와 역전 홈런의 매력이 있는 한 해설위원만 아니라면 그를 야구장에서 보기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2회에 번트를 대는 건 야구를 재미없게 만드는 것”이라며 팬으로서 애정어린 충고를 빠뜨리지 않는 그다.

이팔성 회장과 정운찬 전 총장의 체험적 야구론이 아니더라도 야구와 경영의 학문적 접목에 나서는 연구기관도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 4월 WBC 직후에 ▲치밀한 데이터 분석 ▲강력한 팀워크 ▲지도자와 선수간의 신뢰 ▲철저한 실패 복기 등을 야구에서 기업들이 배워야 하는 교훈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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