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직장 은행원 '휴가철 스트레스'

신의 직장 은행원 '휴가철 스트레스'

정진우 기자, 도병욱
2009.07.17 08:22

실적 압박에 미래대비 공부까지

A은행 영업점 김모 과장(37)은 요즘 한시름 놓았다. 휴가철이라 고객이 줄어 영업점이 다소 한산한데다 상반기 업적평가가 거의 마무리돼서다.

하지만 지난 5~6월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른바 '만능청약통장'(주택청약종합저축) 때문이다. 은행마다 판매에 사활을 걸었던 만큼 일선 지점 창구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증시가 좋지 않아 펀드에 관심을 갖는 고객이 크게 줄고 신용카드 판매도 녹록지 않았다.

그런 만큼 만능청약통장은 실적을 올리기 위한 은행의 최대 승부처였다. 개인에게 수백좌씩 할당됐고, 이를 채우기 위해 직원들은 발에 땀이 나게 뛰어다녔다. 김 과장은 "친척은 물론 평소에 연락 않던 대학 선후배들까지 찾아 통장을 팔았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을 독려하며 결국 목표좌수를 채웠다.

B은행 퇴직연금사업부의 이모 차장(43) 역시 극심한 실적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저원가성 예금이 주식시장으로 이탈하면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은행으로선 퇴직연금이 새로운 수익원이다. 내년 시장규모만 40억~60조원대다. 밤 9시 이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거의 없다는 이 차장은 "하반기 최대 승부처는 퇴직연금인 탓에 경쟁 은행은 물론 보험사와도 한판격돌이 불가피해졌다"며 긴장감을 드러냈다.

여름철 비수기를 맞아 은행 직원들이 모처럼 실적압박에서 벗어난 분위기지만 실상은 다르다. 짧은 휴식 속에서도 하반기 실적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수신이나 신용대출 등 각 상품이 실적으로 잡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정말 심하다"며 "카드실적까지 더해지면 그 압박은 엄청나다"고 토로했다. 이어 "가끔 대출 승인 때문에 고민하는 꿈을 꿀 정도"라고 말했다.

C은행 본점의 최모 과장(38) 역시 휴가를 받아도 마음이 편치 않다. 경비절감 차원의 무급휴가인데다 업무가 몰리다보니 휴가기간에도 나와서 업무를 보고 있다. 회사에선 휴가를 독려하기 위해 전산망까지 막아놓았다. 컴퓨터로 업무를 볼 수 없도록 한 조치다.

없는 시간을 쪼개 자기계발에 힘을 쏟는 행원들도 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D은행 모지점 박모 대리(32)는 최근 영어회화학원 야간반에 등록했다. 1주일에 3번, 밤 9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영업시간이 30분 앞당겨져서 출근시간도 빨라졌다. 그만큼 힘이 들지만 미래를 위해 과감히 결정했다.

여름휴가를 미루거나 반납한 행원도 많다. 농협 C영업점에 근무하는 최모 주임은 이번 여름휴가를 가을 이후로 미뤘다. 11월에 치르는 금융 자격증시험을 위해서다. 최 주임은 "각종 자격증시험을 위해 휴가를 활용하는 행원이 많다"며 "농협도 이제 시중은행과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위기의식을 느끼는 동료들이 자기계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영업점 직원은 "많은 사람이 연봉을 근거로 은행을 신의 직장이라고 하는데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며 "진정한 신의 직장이라면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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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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