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幸은 행동하는 女心정책"

"女幸은 행동하는 女心정책"

지영호 기자
2009.11.04 10:03

[머니위크]'2'의 행복 / 오세훈 서울시장 인터뷰

[편집자주] "女子라서 행복해요."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 주민등록번호의 반도 '2'로 시작하는 여성의 것이다. 그들이 행복해야 세상이 행복하다. 부드러운 그들은 강함을 이긴다. 그러니 세상도 그들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2의 행복을 위하여~'다. 가 창간2주년을 맞아 여성을 위한 기업, 제품, 서비스 등 '2'를 행복하게 해주는 세상을 돌아봤다.

‘여행 프로젝트?’

지하철에서 처음 이 카피를 접했을 때는 관광공사에서 하는 국내 관광산업 활성화 프로젝트인 줄 알았다. 조금 더 상상력을 보태봐야 근로자를 위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여행 바우처제도(근로자를 위한 여행 쿠폰제) 홍보물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旅行’이 아니라 ‘女幸’이다. ‘여자를 울려라’라는 다소 파격적인 문구로 여성의 감성을 자극한 여행 프로젝트는 여성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자는 서울시의 여성정책이다.

서울시의 여행 프로젝트 사업은 크게 9개다. 화장실, 주차장, 귀가길, 콜택시, 학교급식도우미, 어린이집, 일자리지원, 아파트, 공원 등 여성이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피부로 느끼는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한 것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했다.

최근 아샤 로즈 미기로 UN 사무부총장으로부터 시의 여성 정책에 대해 호평을 듣는 등 여성 친화 도시의 CEO 이미지를 다지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으로부터 여행 프로젝트에 대해 들어봤다.

-서울시의 대표 여성정책인 ‘여행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어느새 3년 전 얘기가 되네요. 서울시장으로 취임하고 얼마 안 돼서 여직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한 여직원이 “시청 여직원들은 운동화밖에 못 신어요”라며 불평을 털어 놓더군요. 얘기인즉 보도블록 사이로 하이힐굽이 끼어서 걸어 다니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어요. 그러던 중 며칠 후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러가다가 아내의 구두굽이 보도블록 사이에 끼어서 굽이 부러지는 일이 생겼는데 하필 주변에 구두수선가게가 없어 한참동안 진땀을 흘렸죠.

이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사회 시스템을 여성의 시각에서 다시 보게 됐어요. 남성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이 여성들에게는 불쾌, 불안, 불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사실 그동안은 대부분의 정책이 남성의 시각에서 결정됐기 때문에 여성들의 숨은 니즈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서울시만 하더라도 정책 결정권을 가진 5급 이상 관리직의 여성 비율은 12%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성시각에 맞는 정책이 부족했던 게 현실이었어요.

그래서 ‘서울시의 150개 전 부서가 정책을 결정할 때는 반드시 여성들의 시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관련해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고민해 보라’고 지시했는데, 이것이 여행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여행 프로젝트는 어떤 정책이고, 그 내용은 무엇인가요?

▶여행 프로젝트는 여성들의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불안, 불쾌, 불편 요소를 제거해 드리는 ‘동사형’ 정책입니다. 예컨대 여자화장실에만 줄이 길게 늘어서있는 것을 보면서 여성화장실의 수를 늘린다거나(여행화장실), 좁은 곳에서 주차하기 어려워하는 여성들을 고려해 주차장 폭을 조금 넓히고(여행주차장), 어두운 밤길이 두려운 여성들을 위해 가로등 하나를 더 설치한다든지(여행길), 여성이 택시를 부르면 지정된 여성운전자가 찾아가는(여행콜택시) 등 일견 사소해 보이는 부분까지 꼼꼼히 챙기는 정책이죠.

물론 이뿐만이 아닙니다. 여성들이 가장 큰 문제로 꼽는 보육, 취업문제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풀어내고 있어요. 공공보육시설을 새로 지으면 100명 기준으로 통상 20억원의 비용이 드는데, 이 비용을 민간보육시설에 투자해 ‘서울형 어린이집’으로 인증해 보육서비스의 질을 높이면서 보육료를 낮춰 공급하고 있습니다. 9월 말 기준 1550개소가 인증절차를 거쳤어요.

또 ‘엄마가 신났다’ 프로젝트를 통해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에게 잠자고 있는 자격증을 되살리고 교육을 통해 숨은 재주를 찾아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여행 프로젝트를 통해 여성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다고 자신하십니까?

▶사실 여행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습니다. 서울은 몇백년에 걸쳐 남성의 시각에 의해 움직여 온 도시입니다. 이런 도시가 몇년의 노력으로 여성친화도시가 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쉽지 않은 이야기지요. 게다가 그간 여성정책은 구호나 거대담론처럼 ‘말’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여성들에게 조차 외면 받을 때가 많았어요.

그래도 여행 프로젝트가 시작된 후 횟수로 3년째에 돌입하면서 여성의 생활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고 또 서울이라는 도시가 비로소 여성의 삶을 배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실감하는 단계에 들어선 듯합니다.

특이한 점은 여행 프로젝트를 국내보다 국제사회에서 먼저 알아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달에는 ‘메트로폴리스 세계여성네트워크 포럼’이 있었는데, 포럼 참석자들이 “모든 정책을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은 서울이 처음”이라며 “세계 도시가 공유해야 할 정책”이라는 호평을 했어요. UN여성지위위원회는 여행 프로젝트를 전 세계에 확산시켜야 할 하나의 롤 모델로 꼽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전남, 익산, 인천 등 여러 도시에서 여행 프로젝트의 유사정책이 나오고 있어 의미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행보는 이제부터입니다. 앞으로 10년 정도는 내다보고 꾸준한 투자와 노력을 해 나가면 명실상부한 여성친화도시로서 여성의 삶을 바꿔갈 수 있게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해외 여성과 비교해서 한국 여성의 위치는 몇점이나 될까요? 또 그 이유와 대책이 있다면?

▶지금으로선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실질적으로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들, 서울시 조직에 한정해서 본다면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 고위직은 대부분 남성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능력과 가능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오히려 여성이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실제로 동일한 환경에서 치러지는 객관적 평가에서는 여성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무원시험 합격자를 봐도 여성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지요.

이번에 제가 쓴 책<Shift>에서도 언급했지만 여성이야말로 미래형 인재가 될 자질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창조사회, 감성사회가 되면 여성의 감수성과 배려심, 게다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수다까지도 새로운 경쟁력으로 각광받게 될 겁니다.

따라서 능력 있는 여성에게 좀 더 기회를 주자는 의미에서 얼마 전부터 몇몇 장래성이 보이는 간부들에게 보직 관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최고급 간부진에 진입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인데요, 단순히 여성 개인의 가능성을 키워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인식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합니다.

‘서울시가 여성의 지위에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하는 메시지가 조직 내에 알려지고, 나아가 다른 지자체, 중앙정부, 민간까지 전파되면 앞으로 한국의 성 주류화를 이루는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민간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여성운동의 방향에 대해 의견이 있다면?

▶이전에도 여성운동, 여성정책은 꾸준히 존재했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용어로 추상적인 담론만을 반복하면서 교감의 통로를 막았고, 그 결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에 비해 여행 프로젝트는 ‘여성의 시각에서 생각하자’는 단순한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 작은 시도는 여성정책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민간의 여성운동이 나가야 할 방향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히 현실에 발을 딛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죠. 일상에서 여성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찾아내는 습관을 기르고 실천 가능한 과제를 발굴해 갈 때 여성이 행복한 사회가 완성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여성정책이 남성들의 불만을 자아내지는 않던가요?

▶여행 프로젝트, 즉 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니까 여성만 행복할 권리가 있고 남성은 없느냐, 남행(男幸) 프로젝트는 왜 안하느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있으셨어요.

저는 여행 프로젝트가 제대로 시행되면 남성들의 행복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아내가 아프면 아이부터 남편까지 한가정 전체가 우왕좌왕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우선 여성이 행복해지는 것이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서울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남성분들도 ‘여성의 행복이 곧 남성의 행복’이라는 믿음을 갖고 여행 프로젝트가 순조로운 행보를 이어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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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울수록 맞서라' 처음 다짐을 잊지 않는 기자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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