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방통문화, 강제보다 자율규제가 바람직"

"건강한 방통문화, 강제보다 자율규제가 바람직"

대담=윤미경 정보미디어부장겸 문화과학부장 정리=김은령 기자
2010.05.24 09:44

[머투초대석]이진강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이진강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어깨는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온갖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막말'이 속출하는데다 청소년들이 보기에 민망한 장면이 방송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어 이를 심의해야 하는 기관장으로서 책임이 커졌기 때문이다.

어디 방송뿐인가. 인터넷을 타고 흐르는 각종 유해 콘텐츠를 실시간 감시하는 일도 해야 한다. 요새는 스마트폰도 신경이 쓰인다. 스마트폰에서 사용되는 애플리케이션은 개발자들이 직접 오픈마켓을 통해 사용자에게 판매하기 때문에 유해 콘텐츠를 걸러내는 작업은 여간 품이 드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원장은 항상 유쾌하다. 국내 최연소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검사·변호사를 거쳐 대한변호사협회장까지 역임한 그가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 심의위원장을 맡은 것은 "그동안 경험을 살려 국민을 위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TV드라마를 즐겨보게 됐다는 이 위원장은 1시간여 진행되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풀어냈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위해 인터넷 역기능을 해소할 수 있는 문화운동을 전개해보겠다는 이 위원장. 그를 통해 변화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역할과 방향을 들여다봤다.

↑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위해 인터넷 역기능을 해소할 수 있는 문화운동을 전개해보겠다는 이진강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이명근 기자 qwe123@
↑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위해 인터넷 역기능을 해소할 수 있는 문화운동을 전개해보겠다는 이진강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이명근 기자 qwe123@

―법조계 출신으로 방송·통신분야가 낯설 것 같은데 취임 9개월을 돌아보신다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이나 통신콘텐츠에 대해 시청자나 국민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 무엇인지 판가름하는 곳입니다. 기본적으로 법조인은 사회에서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요. 본질에서 큰 차이가 없어서인지 원래 여기서 일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별 차이를 못느끼고 있어요. 어떤 사안을 결정하는 방식도 여러 위원과 논의를 거쳐 이뤄지는 구조여서 문제가 없는 것같습니다.

―취임 당시 위원간 갈등이나 직원들의 파업 등 조직 내부적으로 혼란이 있었는데요.

▶조직을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소통'입니다. 위원장부터 민원부서에 있는 하급직원까지 서로의 생각을 알아야 합니다. 심의위원회가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통합조직이다보니 출신이 다른 직원 간의 갈등이 파업으로 번진 듯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취임을 한 거지요. 취임 첫날 파업장소에 "좋은 노랫소리가 들려서 왔다"고 하며 직접 갔지요. 20여분 간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더니 박수소리가 크게 나더라고요. 그래서 '아, 해결되겠구나' 싶었지요. 며칠 후 직원들은 파업을 풀었고, 지금까지 별 갈등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김에 의한 심의라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제가 취임하기 전에는 그런 논란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정부 비판에 재갈을 물린다 식의 비판이 나왔는데, 저는 공정하게 심의하라고 했습니다. 심의안건 자체가 정치색이 있는 것이라고 해도 심의위원들끼리 충분히 토론하면 합리적인 결론이 나옵니다. 결론이 합리적이니, 비판도 그만큼 줄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막말' '막장' 방송에 대한 심의를 강화하니까 방송에 재갈을 물린다는 얘기도 나오더라고요.(웃음)

ⓒ이명근 기자 qwe123@
ⓒ이명근 기자 qwe123@

―막장·막말 방송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최근 방송콘텐츠 질에 대한 비판이 높습니다. 우리나라 방송콘텐츠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 혼자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여론수집이나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시민단체 2군데에 용역을 줘서 방송콘텐츠에 대한 분석보고서를 받았습니다. 보고서에는 공영방송마저 선정성, 폭력성, 국적불명의 언어, 비속어 등의 문제가 많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었습니다. 방송언어에 대한 연구용역도 발주했습니다. 이를 통해 방송언어상의 가이드라인을 만들 예정입니다.

―통신콘텐츠에 대한 문제제기도 많습니다. 기술적인 면으로 교묘히 빠져나가는 부분도 있어서 심의에 어려움이 많으실 것같은데요.

▶인터넷을 포함한 통신영역은 쉽게 삭제할 수도 있어서 신속히 심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용자들이 올바른 문화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지요. 규제 차원을 떠나서 문화적 측면에서 건전하게 정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심의위 차원에서 지난해부터 '그린I넷'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방송부문까지 확대해 캠페인을 추진합니다. 오는 6월8일 발대식을 해서 전국적으로 청소년, 학부모 교육을 하는 등 건전한 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행사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또 정보이용건전단을 구성하고 유해정보를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배포할 예정입니다. 인터넷 댓글과 명예훼손 문제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의위에는 명예훼손분쟁조정부가 있어서 문제가 발생해서 신청하면 변호사들과 위원 5명이 조사를 해서 조정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같은 명예훼손 조정시스템은 앞으로 활성화해나갈 방침입니다. 아울러 인터넷업체들의 자율심의를 지원할 예정입니다. 포털들이 스스로 정화하고 인터넷문화를 정착시키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 중요하고 큰 사안만 심의위가 맡고 일상적인 문제는 포털에 맡기고 협력을 강화할 방침입니다.

―최근 스마트폰 사용자를 겨냥한 모바일 음란물이 넘쳐난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취임하고 2개월 후 일본에 가게 돼 휴대폰 모바일 콘텐츠를 어떻게 규제하는지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인터넷은 우리가 앞섰지만 모바일은 일본이 훨씬 앞섰더군요. 일본 청소년들에게 모바일은 생활수단입니다. 모바일 유해정보도 엄청나고요. 그래서 정부는 부모의 동의없이 청소년들에게 유해정보 차단장치를 해제해주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청소년용 휴대폰에 유해정보 차단장치를 기본 탑재토록 한 거죠. 그런데 실상을 보니 아이들 요구에 부모의 대다수가 이 차단장치 해제에 동의해줬더라는 겁니다. 결국 정부의 강제수단보다 사업자들의 자율규제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래서 얼마전 휴대폰에서 유통되는 모바일 만화를 한번 점검해봤습니다. 200여개 만화 가운데 109개가 선정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통사가 이 결과를 보고 유해 만화를 스스로 삭제했습니다. 지금은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기구를 만들어 심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심의위는 자율규제하는 업계를 지원하면서 모바일 심의제도 개선방향에 대해서도 꾸준히 연구할 계획입니다.

ⓒ이명근 기자 qwe123@
ⓒ이명근 기자 qwe123@

―간접광고, 가상광고 등 광고시장도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광고심의도 변화가 필요할 것같은데요.

▶'간접광고' '가상광고'가 100%로 허용된 것은 아닙니다. 광고의 규격과 범위, 시간이 모두 제한돼 있습니다. 허용기준을 자세히 모른 방송사가 과도하게 PPL 협찬을 한 경우가 있었는데, 결국 '시청자 사과' 제재를 받았습니다. 협찬이 아닌 간접광고를 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전에 반드시 시청자들에게 이를 알리는 고지를 해야 합니다. 가상광고는 운동경기에만 허용됩니다. 아직 이같은 기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업자들을 위해 허용기준을 적극 홍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다면.

▶방송·통신 쪽 출신도 아닌 위원장이 와서 낙하산이라는 얘기도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10개월간 진심을 가지고 일하니까 이제는 그게 아니라는 걸 다들 알아주는 것같습니다. 변호사 하고 살면 돈도 벌고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데 포기하고 심의위에 왔습니다. 마지막 봉사라는 생각으로 온 거고 사심없이 일하니까 즐겁습니다. 최근 검사, 변호사, 심의위원장 중 어느 게 제일 보람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항상 그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뭐가 더 좋다는 말보다 그동안 상당히 보람있는 생을 살아왔다고 대답했습니다.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저는 항상 지금 현재 일을 잘해나가자고 생각하며 일할 계획입니다.

【약력】

△1943년생 △휘문고·고려대 법학과 졸, 서울대 사법대학원 수료 △제5회 사법시험 합격 △대검찰청 형사 제1과장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부장검사 △서울고등검찰청 검찰관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장 △서울지방변호사 부회장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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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령 기자

머니투데이 증권부 김은령입니다. WM, 펀드 시장, 투자 상품 등을 주로 취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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