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시각]"사우디 너마저" 투심 뒤흔든 루머

[월가시각]"사우디 너마저" 투심 뒤흔든 루머

권성희 기자
2011.03.02 08:50

"꺼진 불도 다시 보자"란 금언은 주식 투자에도 꼭 맞았다. 중동 반정부 시위의 불길은 가라앉는 듯 보였다. 하지만 리비아 사태가 내전으로 악화된 채 대치 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소요는 중동의 다른 국가로 확산되며 동요하는 지역의 범위는 넓어지는 양상이다.

1일(현지시간) 뉴욕 증시가 일주일만에 또 다시 1% 이상 하락한 이유는 중동의 정정 불안으로 인한 유가 상승과 "유가 상승이 경제 성장세와 물가 안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원론적인 언급이었다.

하지만 이날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중동에서 날라든 뉴스와 루머였다. 특히 석유 생산량 순위 4위인 이란에서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는 소식은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부추겼다.

◆사우디도 안전하지 않다..투자자 불안 고조

1일(현지시간) 이란에선 야권 지도자 2명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리던 중 시위대과 경찰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란 정부는 강경진압에 나서며 시위의 싹을 자르려 시도하고 있지만 반정부 시위가 이란에서도 강화될 수 있다는 조짐 자체만으로도 투자자들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사렸다.

루머도 투심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뉴욕 금융시장에서는 한 때 사우디 아라비아가 동쪽 국경에 접해 있는 바레인의 소요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탱크를 보냈다는 루머가 돌았다.

이 때문에 바레인 대변인까지 나서 "그 탱크들은 쿠웨이트 국경일 행사에 참여했다 돌아오는 바레인 탱크"라고 해명해야 했다. 바레인 대변인은 "쿠웨이트가 1991년 이라크군을 몰라낸 것을 기념해 우방국들이 군대를 보내 함께 축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쨌든 왕정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조차 주변국에서 확산되는 시위 사태가 불안한 듯 이날 주가가 7% 폭락했다.

투자자들의 두려움은 이른바 공포지수라 불리는 시카고 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 지수(VIX)가 다시 14.5% 상승하며 21.01까지 오른데서도 드러났다. VIX는 S&P500 지수의 하락에 대비해 옵션을 매수할 때 드는 비용을 말한다. S&P500 지수가 떨어질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VIX가 올라가게 된다.

레이디 에셋 매니지먼트의 최고경영자(CEO)인 해리 레이디는 "우리는 지금 VIX가 얼마나 빨리 올라갈 수 있는지 목격하고 있다"며 "VIX가 두 배로 뛰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가 상승 앞엔 경제지표 호조도 소용 없어

이날 증시는 플러스권에서 출발했으나 곧바로 아래쪽으로 방향을 잡고 전형적인 전강후약의 약세장 모습을 보였다.

이날 오전 10시에 발표된 공급관리협회(ISM)의 2월 제조업지수는 61.4%로 2004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며 19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ISM 지수는 50을 넘어서면 경기 확장을 의미한다. 하지만 경제지표는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ISM 지수 발표 직후 한차례 매수 시도가 나타났지만 밀려드는 매도 주문에 버텨내질 못했다. 이후 증시는 쭉 미끄럼을 타고 내려와 거의 장중 저점에서 거래를 마쳤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이날 2.7% 오른 99.63달러로 마감했고 전자거래에서는 기어이 100달러를 넘어섰다. 던칸-윌리엄스의 수석 부사장인 제이 서스카인드는 가솔린 가격이 갤런당 4달러에 육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미국 경제가 갤런당 4달러의 가솔린 가격을 감당할만큼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2월의 연 환산 자동차 판매량도 1338만대로 예상을 웃돌았다. 하지만 오히려 자동차주는 하락했다. 섀퍼스 투자 리서치의 이사인 토드 살라몬은 "자동차 판매 호조세를 자동차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며 "자동차주를 움직인 것은 유가 상승"이라고 말했다. 유가가 오르며 자동차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버냉키도 인정한 유가 상승의 위험성

이날 의회에 출석해 증언한 버냉키 FRB 의장도 시장의 매도세를 촉발시켰다. 물론 그는 "최근의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능한 결과는 일시적이고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소비자 물가의 상승세"라며 "이러한 전망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의 예상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름대로 유가 상승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을 가라앉히려 노력한 셈이다.

하지만 그도 "유가와 다른 원자재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세는 경제 성장세와 전반적인 물가 안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특히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잘 억제하지 못한다면 위협이 될 것"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벨 인베스트먼트 어드바이저의 수석 투자 책임자인 매트 킹은 "버냉키의 발언은 리비아 사태가 시작된 이후 투자자들이 두려워했던 것이 맞다고 확인해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버냉키는 지금까지 원자재 가격 상승과 관련해서도 인플레이션은 거의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왔는데 이번 발언은 처음으로 잠재적인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USAA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주식투자 부사장인 와시프 라티프는 "버냉키는 양적 완화를 예정대로 계속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국채 매입을 통한 시중 유동성 확대 프로그램은 올 여름이면 끝난다"며 "투자자들이 이제 그 다음엔 뭐가 올까 궁금해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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