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의사와 약사들의 "내가 왕년에.."

[광화문]의사와 약사들의 "내가 왕년에.."

오동희 바이오헬스부장
2011.06.15 08:00

"내가 왕년에 어마어마했거던..."

KBS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인 봉숭아학당의 첫 테입을 주로 끊는 '왕년에(개그맨 조지훈)'가 담고 있는 개그 코드는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현상들을 자기 중심화하는 것이다. 자의적 해석이 이 개그의 웃음 코드다.

의학적으로 보면 모든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자아도취이거나 자기과시에,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인증(離人症)이 개그의 풍자 속에 담겨 있다.

자신이 재미있는 얘기를 막 떠드니 달려오던 기차가 우스워서 "큭큭큭' 하면 웃는다든지, 놀이동산의 기구에 탄 사람들이 자신의 개그가 너무 우스워 '꺄약'하고 환호성을 지른다든지 하는 게 '왕년에'식 해석이다.

현실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내가 왕년에.."라는 말이다. 왕년에 잘나갔던 의사나 약사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의 경우도 지역민심을 쥐고 있는 약사회의 힘에 굴복한 보건복지부의 결정에 청와대가 나서서 '비틀어진 정책'을 제자리로 돌려놨다는 얘기도 들린다.

복지부가 머뭇거렸던 이유는 전국에 걸쳐 있는 약사회 조직의 힘 때문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과거 동네 약국은 동네 미용실과 택시와 함께 정치인들을 옥죄는 표심(票心)의 바로미터이자 표의 향방을 결정짓는 주요 창구로 통했다.

약사회에 등록된 6만명의 약사 중 개업해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3만명 약사가 운영하는 약국이 의약분업 이전에는 동네 정보 통로였다. 그만큼 약사회의 영향력은 컸다. 정치인들 입장에서 한 지역구내에 있는 100여개 약국에 밉보이면 좋을 게 없다는 인식이 컸다. 1개 약국이 1000명의 주민들과만 접촉한다고 하더라도 10만명의 유권자와의 연결고리다.

진수희 장관이 지난 1월 성동구약사회의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간 것도 지역구인 성동구 약사회의 조직력을 의식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같은 약사회의 영향력이 '왕년'만 못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의약분업의 결과라는 것이다. 과거에 약국은 각 지역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국민의 가정에 가장 가까운 지식층의 직업군이었다.

하지만 의약분업 이후 의사처방전이 떨어지는 병원인근으로 상당수의 약국이 자리를 옮기면서 '동네 사랑방'의 지위가 사려졌다는 것이다. 병원 옆에 있지 않으면 처방전을 받아 약을 지으려는 환자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 내 곳곳에 퍼져 있던 약국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약사들의 역할이 처방전에 따른 조제 수준에 그치면서 약국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한 이유다.

과거에는 아프면 약국에 찾아가 "이런저런 곳이 아픈데..."라고 하면 약사들이 환자의 상태를 보고 조제하면서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처방전을 주고, 그에 맞게 조제하면 그걸 받아서 나오는 수준이다.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역할이 줄었다는 얘기다.

왕년에 잘나가던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의사가 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 얘기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9년 한 해 동안 휴업 또는 폐업한 병원이 2302곳으로 전체 병원 중 7%에 달한다.

어려워지다보니 의사들도 '국민의 이름'을 빌어 밥그릇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선택의원제 반대 목소리를 내기 위해 오는 22일 탑골공원에서 '전국 의사대표자 결의대회'를 연다고 한다.

그런데 환자단체는 선택의원제가 만성질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며 적극 찬성하고 있다. 선택의원제가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방안 중 유일하게 환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라는 게 환자단체의 입장이다.

의료계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가 의약분업 후 11년만에 15일 열린다. '왕년에씨(氏)'가 모든 현상의 중심을 자기로 인식하듯 의사나 약사 모두 의학계의 중심을 '국민'이 아닌 '자신들과 이익단체'로 놓고 현상을 해석한다는 인식을 받고 있다.

선택의원제나 약국외 판매도 그렇고, 의약품 분류체계 개편과 재분류의 과정도 그렇다. 전문의약품의 일반약품 분류나, 일반의약품의 전문의약품 분류, 약 판매 장소 확대 등이 '왕년에 어마어마했던' 자신들의 입장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왕년에 국민 건강을 위해 엄청 어마어마하게 힘을 썼거던..."이라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할만 의사와 약사들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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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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