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브러더스 파산 3년이 지난 지금, 자금난을 겪고 있는 곳에 언제나 등장하는 국가가 있다. 미국을 위협하는 G2로 성장한 중국이다.
미국 금융회사든, 그리스든, 돈이 없어 쩔쩔매는 대형 기업이나 국가가 있는 곳마다 중국이 자금을 투입할 것이란 관측이 새어 나온다. 하지만 중국은 "도와주겠다"고 립서비스만 할뿐 실제 지갑은 좀처럼 열지 않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중국이 과다한 채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의 국채를 매입할 것이란 소식이 흘러나오면서 뉴욕 주식시장은 급락세에서 강세로 급반전했다. 하지만 하루만인 13일 이탈리아 정부는 중국에 국채 매입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나섰다.
파이낸셜 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WSJ) 등은 12일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의 루 지웨이 회장이 지난주 이탈리아를 방문했으며 이탈리아 정부는 이 때 국채를 매입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13일 이탈리아의 5년물 국채 39억유로에 대한 입찰이 지지부진하게 끝나자 이탈리아 정부는 루 지웨이 회장을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국채 매입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나섰다. 이탈리아에 대한 전반적인 투자 가능성에 대해서만 논의했을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이탈리아 정부 발표에 대해 중국 재부무와 CIC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날 이탈리아의 5년물 국채 입찰은 평균 수익률이 5.6%로 결정됐다. 이는 지난 7월14일 이뤄진 같은 만기의 국채 입찰 당시 금리 4.93%보다 대폭 오른 것이다. 금리는 높아졌지만 응찰률은 1.28배로 지난 7월 당시 1.93배보다 더 떨어졌다.
유럽의 구원자가 될 듯하다 막판에 실망시키는 중국의 모습이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월에도 호세 루이스 자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중국을 방문, 원자바오 총리와 회담한 뒤 중국이 스페인 국채를 계속 매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스페인 정부측을 인용해 CIC가 스페인 은행권에 90억유로를 투입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왔지만 CIC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고 스페인 정부도 덩달아 발뺌했다.
원 총리는 지난 6월 유럽을 방문했을 때도 중국은 유로화 채권을 계속 매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말뿐, 중국의 유로화 채권 매입 규모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늘어났다는 신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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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국채 입찰에 직접 참여가 가능한 프라이머리 딜러 은행의 한 트레이더는 "미국 은행이든, 그리스든 언제 어디서든 돈 문제만 생기면 중국이 거론된다"고 말했다. 이날 이탈리아 국채 입찰에 대해서는 "높은 금리가 아니라 수요 부진이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외환보유액이 3조2000억달러가 넘어 세계에서 가장 많다. 게다가 보유 외환을 달러 이외 자산으로 다각화하겠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해 재정난에 빠진 유럽 국가에 구세주가 될 것이란 기대감을 높여왔다.
하지만 WSJ에 따르면 중국은 외환보유액을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상업성을 따져 투자하고 있으며 애널리스트들은 재정난을 겪고 있는 유럽 국가, 특히 이탈리아처럼 규모가 큰 국가에 도움이 될만한 규모로 중국이 국채를 매입해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이달부터 연말까지 1113억유로가 넘는 국채를 롤오버(차환)해야 하는데 중국이 적극적으로 이탈리아 국채를 매입해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중국 외환관리국(SAFE)은 외환보유액을 안정성과 유동성, 수익성의 원칙에 따라 투자한다는 원칙을 거듭 반복해 왔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는 안정성은 물론 유동성에 있어서도 미국 국채보다 못하다.
만약 중국이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를 대거 매입한다면 이는 SAFE의 대대적인 정책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데 애널리스트들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 다각화는 독일 같은 리스크가 낮은 국가의 국채 매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운용 자금이 4000억달러가 넘는 CIC도 이탈리아나 스페인에 도움이 되긴 어렵다. 이미 지난해 운용 자금을 다 투자한 상태로 현재 중국 정부가 자금을 늘려 주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자금 분석회사인 Z-벤에 따르면 CIC가 투자한 전체 자금 중 국채 비중은 190억달러로 5%도 안 된다.
설사 이 190억달러를 다 회수해 모두 이탈리아 국채를 사는데 쏟아 붓는다해도 국가부채가 1조9000억달러에 달하는 이탈리아에 도움이 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WSJ는 중국이 막상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를 대거 매입해 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더 확대하고자 하면 다른 유럽 국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전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서 외교를 담당하는 프랑스와 고드망은 "유럽 국가들은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자산이 중국에 헐값으로 매각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유럽 국가들이 지원 수준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Z-벤의 최고경영자(CEO)인 마이크 코맥은 "SAFE가 정말 이탈리아 국채를 매입한다면 이건 SAFE와 만나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정부 대 정부의 협상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주 루 지웨이 CIC 회장과 SAFE 관계자들이 이탈리아 정부 인사와 만났다고 해도 이탈리아 국채 매입과 관련해 의미있는 협의에 도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