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커버]고졸 혁명/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진단
바야흐로 고졸 채용 전성시대다. 노동시장에서는 지난해부터 고졸을 채용하려는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금융권을 시작으로 삼성, CJ, 한화 등 대기업 역시 대규모로 고졸자 채용에 가담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은 있다. 정부 주도로 이뤄진 단기간의 정책이기 때문에 자칫 유행처럼 번지다가 금세 사그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숫자'만 강조하다 보니 노동의 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은행권의 고졸 채용은 대부분이 2년제 계약직이다. 2년 후에는 선발을 거쳐 정규직, 혹은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될 뿐이다.
전문가 역시 정부의 고졸 채용 문제에 현미경을 들이대 보면 수박 겉핥기식으로 단순하게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단기간에 고졸 채용을 매듭지으려다 보니 비정규직, 일용직 같은 쉬운 방안만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를 만나 현재의 고졸 채용 정책의 문제를 짚어보고 그 해법을 찾아봤다. 이 교수는 "근시적인 채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임금과 직무배치, 직업 훈련까지 연계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결국 고졸 채용은 제자리만 맴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류승희 기자)
- 정부가 추진하는 고졸 채용을 어떻게 보나.
▶ 정부의 고졸자 채용 장려는 고학력자가 필요 이상 많은 '학력 인플레'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대학진학률이 세계 1, 2위를 다툴 정도로 높다. 대학을 나와야 좋은 일자리가 있을 뿐 아니라, 사람대접까지 받을 정도로 학력이 지위를 가늠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이렇다보니 노동시장에서도 고학력자들은 이미 초과 상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높은 학력이 요구되는 일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제조업 현장직 등 지식노동이 요구되지 않는 일자리들이 있어 저학력자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면에서 고졸 채용을 장려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
- 그렇다면 정부의 고졸 채용 장려가 학력 인플레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나.
▶ 지금과 같은 정부의 압박이 없다면 기업차원에서 고졸 채용이 계속될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향후 정권에서 지금과 같은 정책적 의지와 관심이 없다면 유행에 그칠 것이라고 본다. 기업의 자발적인 채용이 아닌 정권의 의지로 추진됐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어느 때보다 고졸 채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다시 고졸 채용 열기가 식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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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입장에서도 인재 선발에 대해 전략적인 필요가 없다면 고졸 취업문이 다시 막히게 될 수 있다. 이미 뽑힌 고졸자들은 애물단지 취급을 받게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문제다. 현재의 정부의 정책이 결코 고졸 채용을 자리 잡게 할 근본적인 방안은 아니라는 얘기다.
- 이렇게 된다면 고졸자가 취업하더라도 사내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 학력차별이 기업 내에서 여전히 만연한다면 대졸자와 승진, 급여 등의 격차가 심화될 것이다. 만약 고졸자가 취업했더라도 그 기쁨은 잠시, 언젠가는 기업의 인사 시스템의 벽에 부딪혀 좌절감을 맛보게 될 수 있다.
현재는 학력 격차가 직무, 직군으로 구분돼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단순 업무는 고졸 인력이, 핵심 업무와 관리직군은 고학력자에게 배치된다. 고졸자는 단순 업무만 지속하게 되고 임금 차별 등의 문제를 계속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고졸자는 다시 대학을 찾거나 그렇지 않으면 직장에서 튕겨져 나오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
일본 같은 경우는 직장 내에서 학력 간 차단에 대한 저항감이 있다. 즉 중·고졸 출신들도 충분히 직장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승진이나 임원 임용의 기회가 똑같이 주어진다. 반면에 우리는 고졸출신에게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 정부의 고용 정책 포커스가 고졸자에게 맞춰있다 보니 대학 졸업자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 자연스럽게 일어난 채용이 아니다보니 여기저기서 억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졸자에 대한 역차별 역시 그중 하나다. 인위적으로 고졸자에게 채용문을 열어 주려다보니 풍선효과가 생겨 고졸자의 취직 문제가 대졸자에게 전가되는 꼴이 됐다. 바늘구멍인 취업문에 고졸자까지 더 얹어진 것이다.
예전에는 공부도 잘하고, 뛰어난 인재가 집안의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취업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고졸은 학력이 그만큼 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학에 가는 것이 일반적인 풍토가 됐기 때문이다.
대졸자가 역차별을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선발 부문을 분명히 나눠야 한다. 고졸자를 뽑는다면 그에 맞는 직군들을 더욱 많이 만들어야 한다.
- 앞으로 기업과 정부는 고졸 채용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 고졸 채용 문제는 생각처럼 간단하지도, 단시간에 풀어낼 수도 없다. 사회·문화적으로 뿌리 깊은 차별 의식부터 바꿔야 하는 문제기 때문이다.
기업은 고졸 채용 이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고졸자를 선발한 후에 직장 내에서 일도 배우고 경력을 만들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처음은 비록 단순한 직무가 주어지더라도 고급 업무를 익힐 기회를 주고 자기 계발할 수 있도록 직업 훈련을 계속 해야 한다. 채용, 임금, 직무배치, 훈련 등의 문제가 종합적으로 준비돼야 한다. 이것이 뒷받침돼지 않는다면 고졸채용 역시 허울뿐이 된다.
1998년 이전만 해도 기업 내에서 기업 문화를 가르치고, 사회성을 배우고, 기술, 인재상 등을 키우고 인재를 적절히 활용했다. 인재에 대한 투자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 기업도 이와 함께 성장했다. 하지만 IMF 이후에는 미국처럼 필요하면 쓰고, 필요가 없으면 버려지는 인력들이 넘쳐난다. 기업에서도 인재에 대한 투자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
내부적으로 교육을 소화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을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일하면서 개별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줘야 한다. 산학이나 경력개발센터 등을 통해 대졸 경력 못지않은 성공모델들이 만들어지면 대학진학만을 선택해야 했던 고졸자의 폭도 넓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