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커버]불붙은 원유 도가니/원유대란에 들썩이는 대한민국
비산유국의 아픔일까. 이란발 리스크로 야기된 유가 급등세가 대한민국의 '기름경제'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결국 지난달 27일 사상 처음으로 전국 평균 휘발유값이 리터당 2000원을 돌파하고 말았다. 경유, 등유, 액화석유가스(LPG) 등 유가 고공행진은 품목을 따지지도 않는다.
유가 국면이 심각성을 더하자 대통령까지 나서서 "일본에 비해 한국의 유가는 왜 불안하냐"며 불만을 쏟아냈다. 일각에선 "유류세를 인하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지난달 29일 "기름값이 130달러를 넘으면 유류세 인하나 5부제를 검토하겠다"며 긴급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에 대한 현실성을 놓고도 이래저래 말들이 많은 요즘이다.
원유대란 시대의 2012년 상반기 대한민국 '오일경제', 과연 괜찮을까.

◆휘발유 리터당 2000원 돌파…소비는 더 늘어 '고통'
"대구와 부산으로 출장을 자주 가는 편인데 한달 기름값이 80만원을 넘으니 이제 차 끌고 다니기가 무섭네요."
보험 영업을 하는 정미란(34) 씨. 그는 "기름값이 이제는 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며 "정부든 업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유가 인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국내 휘발유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우면서 이처럼 소비자들의 고통 또한 커지고 있다.
국내 휘발유 값 상승세는 지난달 27일 2000원대 돌파 이후에도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최고가 다음날은 물론 이틀 뒤인 29일에도 전국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이 리터당 2005.13원으로 전일보다 1.14원이나 치솟았다.
LPG 가격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달 전국의 LPG 판매소의 일반LPG 고시 가격은 ㎏당 2076.88원으로 사상 최고가였던 지난해 6월 2102.17원에 근접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유가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오히려 늘고 있다는 점이다.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2월 휘발유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7.59% 증가해 역대 1월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러다 보니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란 사태가 악화될 경우 국제유가가 현재 배럴당 120달러대에서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이란산 원유수입 감축은 국제유가의 급등을 불러오게 된다"며 "정유사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기름값 부담을 떠안아야 된다"고 말했다.
◆유류세 인하 요구 봇물…정부 "일괄 인하는 안돼"
최근 업계에선 연일 상승하고 있는 기름값을 잡기 위해서는 '유류세 인하'가 유일한 해법이라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알뜰주유소 확대와 주유소 혼합판매 허용, 공공부문의 유류 공동구매, 온라인 석유시장 개설 등의 대책이 크게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유류세는 정유사의 세전 공급가격에 붙는 교통에너지 환경세, 교육세, 주행세, 부가가치세 등 각종 세금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 정유사 공급가의 46%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유류세를 10% 내리면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평균 80원 정도 하락할 것으로 추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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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정유업체 관계자는 "알뜰주유소 등 다른 방법도 고유가 시대의 해법이 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유가를 내리기 위해서는 유류세 인하가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고 전했다.

천연자원 고갈로 전 세계가 에너지 대란에 직면한 만큼 대체에너지 개발이 시급하다.
일각에서는 당장의 유류세 인하가 어렵다면 서민과 영세 자영업자에 한해 제한적으로라도 유류세를 환급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현 시점에서 일괄적인 유류세 인하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나라의 휘발유값 대비 유류세 비중은 4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3%보다 낮다"며 "예전에 유류세를 내렸을 때 서민들의 체감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는 유가급등에 따른 해결책으로 유류세 인하보다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공동으로 유류를 구매하고 알뜰주유소를 늘리는 방안을 내놨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5영업일 이상 웃돌면 컨틴전시플랜(비상 계획)에 따라 유류세 인하, 차량 5부제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게 주 내용이다.
◆정유업계, 웃고는 있지만 정부에는 '눈치'
유가 급등세는 소비자들에게 '해'가 되지만 정유업계로선 오히려 '득'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50.6% 증가한 2조8488억원, GS칼텍스는 68.3% 늘어난 2조200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유가가 고공행진함에 따라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해 정제마진이 커진 게 작용했다.
따라서 유가 급등으로 정유업체들의 이익 규모가 향상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된 의견이다.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이 이란 사태 등 국제 환경 변화로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선 상황이어서 연초에 정유사들이 세웠던 국제유가 밴드를 훌쩍 넘어섰지만 정제 마진과 석유화학제품의 이익은 개선될 소지가 높다는 것이다.
또 연초와 비교해 휘발유와 경유, 석유제품 가격이 배럴당 10~20달러 급등하면서 정유업체는 수천억원의 재고평가 이익까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유가가 상승하면 정제마진이 늘어도 이를 통해 오히려 석유제품의 수요가 감소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게 정유업체들이 처한 상황이다. 또 유가 상승으로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오르면서 물가당국의 압박이 거세 나름 '속앓이'를 해야 하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원유 수급 문제 근본 해법은
이번 '이란 발 리스크'로 인해 이제 한국경제는 상습적인 고유가 시대에 직면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고유가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에너지 절약운동을 체질화하는 동시에 정부도 신재생·대체에너지 개발을 위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이 유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에너지 과다소비국인 영향이 크다. 국제에너지기구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간 에너지 소비량은 4.27 TOE(석유환산톤)로 프랑스 4.34, 일본 4.06, 영국 3.83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4.67보다 낮지만 미국(7.97)을 제외하고 이들 국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2∼3배라는 점에서 사실상 한국은 세계 최고의 에너지 소비국인 셈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1970년대 초 1차 오일쇼크와 1980년대 중반, 그리고 최근 등 세 시점을 놓고 볼 때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에너지 효율성이 하락한 나라는 우리가 유일한데, 그만큼 우리나라가 에너지 효율성 제고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얘기라고 꼬집는다.
단기적으로 원자력 발전 활성화, LNG 활용 등 에너지원을 다양화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중화학공업 분야를 중심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여 국제경쟁력 향상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모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유류세 감면 등은 대표적인 전시행정이나 다름없는 일회성 대책에 그칠 수 있다"며 "때문에 유가인상은 과감히 가격에 반영하는 대신 에너지 절약기술이나 대체에너지 개발 등을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VS 일본, 휘발유값 왜 다른가
지난달 28일 이명박 대통령은 "기름값이 상승하는 게 현재 맞는 것인지, 다른 주변 국가들도 기름값이 이렇게 올라가는지 확인해보라"며 "물가상승률이 매우 낮아 인플레이션 정책까지 쓰는 일본은 왜 국제유가 상승 영향을 적게 받는지 살펴보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연 한국과 일본의 기름값 변동률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국내 정유업계에선 일본의 휘발유 가격 흐름이 한국보다 안정적인 이유로 '유류세'를 꼽는다. 휘발유 가격에서 유류세 비중이 한국은 46.2%인데 반해 일본은 39.8% 수준이다. 따라서 한국의 경우 휘발유에 붙는 부가가치세 때문에 일본보다 등락폭이 클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유류세 외에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의 휘발유 가격 결정방식이나 정유업계의 시장구조 차이에 원인이 있다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휘발유 가격 결정방식은 일본보다 국제유가 등락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다. 반면 일본은 원유 도입가격과 함께 도쿄상품거래소에 개설된 휘발유 선물시장 가격을 반영해 휘발유 가격을 정한다. 그러나 국내 정유사들은 1주일 전 싱가포르 현물가격에 연동해 휘발유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의 정유업계가 경쟁체제라는 점도 일본 휘발유 가격 안정의 이유로 분석된다. 한국은 SK이노베이션과 S-Oil,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4대 정유사가 시장의 98.1%를 차지하는 과점 구조지만 일본은 휘발유를 정제하는 정유사 9곳, 정유사로부터 휘발유를 사서 주유소에 공급하는 대형 '원매사' 8곳이 경쟁하고 있어 섣불리 휘발유 값을 올리기 어렵다.
송보경 소비자시민모임 석유시장감시단 단장은 "우리나라는 4개의 정유회사들이 시장을 독과점 형태로 유지하고 있다"며 "이는 정유사 마음대로 가격을 조정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기름값 변동에 영향을 끼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