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진의 정신건강 이롭게 하기]

봄이 왔다. 저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시작하려한다. 새 학기를 맞은 아이들은 기대와 설레임으로 학교로 향하고, 이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는 걱정이 앞서 잔소리가 늘어난다.
이때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말없이 응원 해주는 아빠의 마음에는 흐뭇함이 넘친다. 그러나 여기 한 아빠는 자신의 아이가 커가는 것도, 학교를 가는 모습도 먼발치에서나마 본 적이 없다.
50대 중반인 이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10대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남보다 술이 세고, 잘 취하지 않는 것을 그저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술이 주는 즐거움이 가장 크다고 믿고 살아온 그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지만 그 어떤 환경이나 보상도 술을 대신해줄 수 없었다. 결국 중독성 음주와 관련된 여러 문제들로 그는 편안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권리와 가족을 맞바꾸는 선택을 하게 된다.
치료 현장에서 만나본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들으면서 알코올 중독은 환자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가족 전체를 멍들게 하는 '가족 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를 받기 위해 내원한 환자나 그 가족들은 이미 심각한 중독문제로 회복이 힘들 정도로 상처를 받은 상태였다. 일이나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려는 심리도 벗어던져야 한다. 알코올 중독은 지금 당장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알코올 중독은 스스로 음주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채 신체적·정신적·사회적·직업적 기능의 손상을 입게 된다. 알코올 중독자는 술로 인해 여러 문제가 생기는데도 지속적으로 음주를 계속하거나 음주를 하려는 이유와 변명을 끊임없이 찾는다.
중독 초기에는 뇌에서 술에 대한 감수성이 낮아지며 좀 더 많은 양의 술을 요구하게 된다. 내성이 증가돼 고통 없이 폭음과 과음을 반복하게 된다. 간헐적으로 음주 후 폭력 사건과 음주 사고 같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직업을 유지하는데 문제가 없고, 사회적 기능의 손상도 없어 지속적으로 음주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초기 단계에서는 특히 자신은 중독자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병이 치명적으로 진행되는데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결국 중독 증상이 심각해져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된다. 하지만 이미 치료가 늦어져 뇌 손상이 시작되고 금단 증상도 심해져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자해나 타해 같은 위험한 행동도 불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부터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술을 마시며 보내고, 술을 감춰두고 마시는 행동까지 나타나며 스스로 고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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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최근 들어 알코올 중독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줄고, 알코올 중독을 병으로 인식하고 수용하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알코올 중독 환자의 경우 5년 전부터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자신의 의지만으로 술을 끊어보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한 번의 재발과 실패를 경험 후 전문적인 치료의 중요성을 스스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입원한 동안에는 약물치료와 다양한 중독 전문 교육을 받았고, 퇴원 후에도 단주 모임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해 현재까지 4년간 단주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아이 앞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매년 봄이 오면 그는 자신의 아이가 얼마나 자랐을까 궁금하지만 아직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허락된 당연하고 작은 행복이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엄청난 용기를 내야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기에 탈출구가 없는 알코올 중독자의 봄은 그래서 더 잔인하다. 알코올 중독은 무엇보다 빠른 치료가 최선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