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다시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서 유로존 재정위기 재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일 스페인 국채입찰 수요가 급감하며 불거진 `스페인 우려`는 10일 국채 10년 물 금리가 6%에 육박하며 더욱 고조되는 모습이다.
스페인 신뢰 상실이 촉발된 시점은 지난달 2일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재정적자 목표를 수정하면서 부터다. 스페인 정부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8.5%였던 재정적자비율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올해 GDP 대비 재정적자 목표를 4.4%에서 5.8%로 대폭 올려 잡았다. 비난이 거세지자 스페인 정부는 EU와의 협의를 통해 재정적자 목표치를 5.8%보다 낮은 5.3%로 재조정했지만, 시장의 신뢰를 크게 잃었고, 지난달 1일 4.87%까지 하락했던 스페인 국채 금리는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일단 시장의 우려는 라호이 정부가 지난달 30일 273억 유로의 재정삭감을 골자로 한 예산안을 계획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란 데 있다. 스페인 국민당 정부가 지방정부들의 지출을 통제하지 못하며 재정적자 감축 목표가 달성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또 이미 실업률이 23%에 이른 스페인 경제가 긴축정책으로 더 큰 침체에 빠져들 경우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앞서 2.3%의 성장률을 예상했던 스페인 정부는 올해 GDP가 1.7% 줄어들 것이라고 성장률 목표치를 수정했다. 실업률도 24.3%로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 성장률도 이미 당초 목표치였던 1.3%를 밑돈 0.7%를 기록했다. 스페인의 주택가격은 아직 하락세며 기업과 개인들의 파산도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긴축이 이들 국가의 경기회복세를 저해해 채무상환 능력을 감퇴시킬 수 있다.
앨런 윌데 베어링스 채권, 외환 대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재정수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지와 경기 회생에 성공할 수 있을 지 여부에 대한 커다란 긴장감이 있다"며 "스페인은 결국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EU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채금리 반등은 유럽중앙은행(ECB) 응급처방의 '약발'이 다해가는 신호로도 풀이된다. 스페인 국채금리는 지난해 12월 8일 유럽중앙은행(ECB)이 3년 만기 저리 대출 프로그램인 장기자금공급조작(LTRO) 실시 계획을 발표한 이후 하락해 왔다. 지난해 11월 말 6.7%까지 상승했던 국채 금리는 올해 1월 5% 밑으로 하락했다. 스페인 은행들이 ECB 지원 자금으로 자국 국채를 대거 사들인 점이 영향을 줬다.
독일이 최근 유럽 구제기금을 7000억 유로로 일시 증액하는데 합의했지만, 이러한 '방화벽'이 유로존 4위국인 스페인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란 인식도 스페인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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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채, 경기둔화 등 다른 유로존 국가들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 뿐 아니라 스페인은 민간부채와 만성적인 경상수지 문제까지 안고 있다. 대외불균형을 나타내는 경상수지 적자는 정부 재정적자와 가계·기업 적자의 합을 의미하는데, 스페인의 경우 정부보다도 민간부문의 대외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스페인은 1994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3.5%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2008년 세계 9위의 경제국으로 부상했다. 1995년 12.75%였던 10년만기 국채 금리가 유로존 가입 후인 2005년 9월 3%까지 낮아지며 저리 대출 수요가 급증했다. 그러나 스페인 경제는 관광업과 주택 경기 호황에 따른 건설업에 의존해 성장해 왔기 때문에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지면서 대외경쟁력 약화라는 위험을 키워왔다. 여기에 스페인 건설업체들은 건설자재 등을 해외에서 수입해왔고 스페인 경제의 소비 중심적 구조는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의 원인이 돼 왔다.
2007년 스페인 경제성장의 한 축이었던 주택시장 버블이 터지고 그 무렵 본격화 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스페인 경제의 경상수지 적자와 민간부채 문제가 심화된다. 저축률이 낮은 스페인은 경상수지 적자 중 대부분을 민간부문의 대외차입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 비 금융기업들의 부채는 GDP 대비 220%로 공공부문(GDP 대비 66%)의 4배다.
민간부채 문제는 스페인 경제의 장기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이자 스페인 은행권에 대한 우려를 낳는 원인이다.
스페인 정부는 부실대출 문제의 산실인 지역은행 까하를 45개에서 14개로 통폐합하는 대대적 은행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스페인 중앙은행에 따르면 스페인 은행들이 건설업체들에게 제공한 대출액 4000억 유로 중 여전히 1760억 유로의 상환이 불분명하고 316억유로는 무수익여신이다. 스페인 은행권이 보유한 포르투갈 국채 650억 유로도 문제다.
ECB 유동성 공급 이후 스페인 국채 금리가 이탈리아 국채 금리를 상회하기 시작한 원인 중 하나도 이탈리아에 비해 취약한 스페인 은행권 문제가 거론 돼 왔다.
상대적으로 금융위기 고비를 잘 넘긴 스페인 대형은행들에 대해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스페인 3대 은행인 방코 산탄데르, BBVA, 라 카익사의 총 자산은 2조7000억달러로 스페인 GDP 1조4000억달러의 2배에 달한다. 미국 3대은행인 JP모간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의 총자산이 6조달러로 미 GDP의 40%에 불과한 것과 대조적이다. 산탄데르와 BBVA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가 지난 4주 간 각각 11.6%, 13.1% 급락한 것도 스페인 은행 우려를 드러낸다. 이 두 은행의 주가는 지난해 40% 급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