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 김원배 동아제약 사장

1980년 초반동아제약(94,500원 ▼1,200 -1.25%)연구소에 한 젊은 연구원이 있었다. 조용한 성격에 수줍음도 많이 탔지만 새로운 것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대리였던 이 연구원은 당시로선 생소한 유전공학분야를 하겠다고 덤볐다. 황당하다는 눈총이 쏟아졌다. 제네릭(복제약)도 제대로 만들기 어려운데 감히 유전공학이라니….
처음엔 유전공학과 관련있는 미생물학, 생화학 등을 독학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몇 년 안가 바닥이 나오자 강신호 회장을 찾아가 선진국에서 유전공학을 배우게 해달라고 졸랐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선 꼭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강 회장은 젊은 연구원의 열정을 보고 당돌해 보이는 요청을 흔쾌히 받아줬다. 그후 그는 일본에서 유전공학을 배우고 돌아와 몇 명의 직원과 함께 B형간염·에이즈·C형간염 진단시약을 만들어냈다. 10여년 후에는 최종 목표였던 신약개발에도 성공했다.
바로 이 연구원이 동아제약 김원배 사장(65)이다. 제약사 연구원 출신으로 CEO(최고경영자)가 된 첫 사례다. 초년병 시절부터 엿보인 경영자DNA를 인정받은 것이다. 2004년 전격 사장에 오른 그는 올해 초 4연임에 성공, 제약회사 최장수 CEO 반열에 올랐다.
그가 사장이 된 이후 동아제약은 '박카스 만드는 회사' 이미지에서 벗어나 비로소 진짜 제약사다운 모습을 갖춰나갔다. 2003년 전체 매출의 34%였던 박카스의 비중이 지난해 16.5%까지 떨어지고 1.3%에 불과하던 자체 신약 매출 비중은 11.9%로 높아졌다. 2003년 5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던 매출은 1조원 돌파를 앞뒀다.
그가 CEO를 맡은 동안 동아제약은 정부의 대규모 약가인하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미래가 있는 회사로 변모했다. 그는 CEO를 꿈꾸는 직원들의 '롤모델'이 됐다. 인터뷰에서 그는 동아제약에서 걸어온 길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평소 공식석상에서 늘 말을 아끼던 스타일에 비춰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
―지금은 동아제약의 체질이 확 바뀐 것 같습니다.
▶연구소에 있으면서 직원들이 가진 가장 큰 불만이 '동아제약하면 박카스 회사'라는 선입견이었습니다. 회사는 물론 회사 밖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그 얘기만 들으면 자존심이 무척 상했습니다. 왠지 평가절하되는 느낌…. 그런 것이었죠.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임원들이 회사가 어렵고 불경기가 찾아오면 `박카스' 값을 어떻게 얼마나 올릴까 고민할 정도로 경영판단이 `박카스'에 매달리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박카스'가 매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래도 제약회사니까 이것은 아니다 싶어 질병치료제를 만드는데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기술경영을 통해 회사를 바꾸고 성장시켜야 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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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 제약사에 연구원 출신 사장이라는 게 신선하고 흥미롭습니다.
▶늘 새로운 것을 꾸미고 생각하는데 흥미가 있습니다. 정해진 틀에 있는 것을 관리하는 것은 싫습니다. 일상적인 영업성적을 챙기기보다 3∼5년 후 우리 회사가 점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하고, 또 그럴 씨가 될 만한 것들을 찾는 게 일입니다. 최근에도 임원들에게 우리가 보통사람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해서는 안되지 않느냐, 진짜 획기적인 것을 하자고 얘기했습니다.
―새로운 분야에 늘 관심이 많으셨던 거 같습니다.
▶연구소에 있을 때부터 그랬어요. 제 전공이 약제학인데요. 연구소에 입사해서 미생물학, 독성학 등 새로운 분야를 해보겠다고 나섰고 실제로 그 분야를 개척했어요. 동아제약이 처음으로 원료합성공장을 만들었는데 제가 기획했지요.
―CEO를 맡아 개발한 대표적인 신약은 무엇입니까.
▶현재 연간 매출 900억원을 올리는 천연물 신약 위염치료제 `스티렌'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천연물 신약의 역사가 이로부터 시작됐다고 자부하는 약입니다. 원래 연구소장을 한 1996년부터 개발에 착수한 것인데 우여곡절을 거쳐 몇 년 전부터 상업적 성과를 내고 있어요.

당시 여러 군데를 발품팔면서 신약이 될 만한 후보물질을 찾아다녔지요. 그러다 우연히 쑥을 사용해 위궤양 치료 효과를 연구하는 논문을 접하게 됐습니다. 천연물인 쑥을 사용하면 부작용도 적을 것이라고 봤죠. 위궤양 대신 우리나라에 많은 위염을 치료하는 쪽으로 적응증을 바꾸기로 했고, 그 전략이 적중했어요.
―신약개발에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있었다면 어떻게 돌파하셨습니까.
▶일반약은 금방 개발하고 금방 파는데 신약은 그게 아니잖습니까. 나올지 어쩔지도 모를 신약개발한다고 사내에서 비난도 많이 받았어요. 또 하필 1998년 외환위기를 만나 연구소 인력이 줄면서 개발이 중단될 운명까지 갔습니다. 어찌 가만 있습니까. 이 고비만 잘 넘기면 신약후보물질들이 우리 미래에 중요한 기술이 될 것이라고 설득에 나섰어요.
강신호 회장을 찾아가 신약개발을 중단하자는 얘기가 많은데 한 번 해보고 싶다고 간곡히 말씀드렸더니 알아서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이후 연구소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크게 써붙여놓고 사기를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스티렌'뿐만 아니라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 기능성 소화불량증 치료제 `모티리톤' 등도 연구·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으면 신약으로 탄생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일본에서 유전공학을 공부하셨다고 하는데 그때와 비교해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의 바이오기술 격차는 어떻습니까.
▶유전공학 공부하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했는데 받아주는 데가 없었어요. 당시로선 첨단기술이었으니까요. 다행히 강신호 회장과 친분이 있는 일본 오츠카에서 받아줬습니다. 1985년 과장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츠카연구소를 처음 보고 깜짝 놀랐지요. 우리나라랑 20년 이상은 기술격차가 있는 것같더라고요.
당시 우리나라 제약사는 농가에서 기른 쥐로 실험을 하던 때였어요. 표준화가 안된 것이어서 사실 실험에 일관성도 없었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일본에 갔더니 유전자를 세포에서 꺼내서 자르고 붙이고 다른 곳에 집어넣는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만 배우는 게 너무 아까워서 배운 모든 과정을 다 그림으로 그리고 기록해놨어요(주: 김 사장은 이 노트를 잘 보관하고 있다가 최근 성균관대학교에 기증했다).
지금은 격세지감을 느끼죠. 항체 바이오시밀러는 일본의 메이지제약과 공동 개발하기로 했는데 우리가 기술제공자입니다. 앞으로 품목에 대해서는 그쪽이 개발할 수 있지만 지금은 우리가 대가를 받는 시스템입니다. 메이지제약으로부터 570억원을 투자받아 생산시설을 송도에 짓고 있습니다. 이달 안에 착공해서 내년 하반기에 완공할 예정입니다. 바이오베터와 바이오신약은 일본보다 어느 부분에선 앞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에피소드 : 김 사장은 전두환 정권시절 이상희 과학기술부 장관을 통해 유전공학을 접하게 됐다. 이 장관이 1970년대 동아제약 연구책임자로 있었던 게 인연이다. 이 장관이 당시로선 영 생소한 유전공학육성법을 만드는 총대를 맸는데 대통령을 설득시켜야했다. 고심끝에 이 장관은 김 사장에게 10분안에 끝낼 브리핑자료를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자기도 모르던 분야라 김 사장은 밤샘하다시피 독학해가며 브리핑 자료를 만들었다. 그림을 위주로 문외한도 알기 쉽게 잘 풀이했다는 그 자료를 보고 전 대통령은 바로 결재를 했다.
―앞으로 동아제약을 어떻게 꾸려가실 생각입니까.
▶신약개발과 수출에 답이 있다고 봅니다. 약가인하와 의약품 제조시설 규제 강화로 이제 연구·개발과 신약개발은 생존과 같은 단어가 됐습니다. 우리 회사는 소화기계, 비만과 당뇨, 비뇨기계 등 삶의 질과 관련된 질환분야에서 혁신적인 신약을 발굴할 계획입니다. 바이오의약품 쪽에서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개발이 목표입니다.
돈이 많이 드는데 내 힘으로 안되는 것은 유수 해외 제약사와 제휴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려 하고 있습니다. 최근 항체 바이오시밀러 개발과 판매를 위해 일본 메이지제약과 전략적 제휴를 추진한 것도 이같은 맥락입니다. 연구·개발에는 지난 5월 준공한 글로벌 규격의 최첨단 신약연구소가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수출에서는 원료의약품, 발기부전치료체, '박카스' 등이 효자노릇을 하면서 올해 40% 이상의 성장세가 기대됩니다. 장기적으로는 천연물의약품과 바이오시밀러사업이 동아제약의 양대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수치상으로는 전체 매출의 40% 이상이 해외에서 나오도록 한다는 게 목표입니다.
―최근 제약협회 이사장을 흔쾌히 맡으셨습니다. 정부와 부딪칠 일이 많은 것같은데 어떻게 꾸려가실 계획입니까.
▶정부 정책에 협조할 것은 하면서 업계가 잘되도록 소통노력을 많이 할 생각입니다. 더불어 제약산업의 인식을 바꾸는 일도 하려고 합니다. 제약사들이 산업발전이나 기술발전에 기여한 것이 많은데 너무 숨겨져 있어요. 리베이트 등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이미지도 나빠져 있고요. 각 회사가 포장용기를 통일하는 일 등 서로 이익이 부딪치지 않고도 서로 협력해서 경쟁력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