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고인의 휴대전화번호와 가족 연락처가 수사기록에 남아 있었음에도 이를 통해 소재를 확인하지 않은 채 공시송달로 재판을 진행했다면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비밀준수 등) 및 사기 혐의로 기소된 황모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황씨는 각각 다른 사건에서 1심 재판을 받아 벌금 400만원과 200만원을 선고받은 뒤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두 사건을 병합해 심리했으나 공소장에 기재된 주소로 보낸 소환장이 송달되지 않자 소재탐지촉탁을 실시했다.
경찰은 황씨가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소지에 거주하고 있다는 내용과 휴대전화번호를 법원에 회신했다. 이후 해당 주소지에서도 송달이 이뤄지지 않자 재판부는 공시송달을 결정했고, 황씨가 두 차례 연속 출석하지 않자 피고인 없이 재판을 진행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기록에는 황씨 본인의 다른 휴대전화번호와 형의 연락처도 기재돼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이들 번호로 연락을 시도하지 않은 채 공시송달 절차를 진행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절차가 적법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주거·사무소 또는 현재지를 알 수 없는 경우에만 공시송달을 허용하고, 항소심 역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인의 출석 없이 재판을 진행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원심으로서는 공시송달 결정을 하기 전에 기록상 나타나는 피고인 본인 및 가족의 연락처로 전화해 피고인의 소재를 파악하거나 송달받을 장소를 확인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원심은 피고인의 주거, 사무소와 현재지를 알 수 없다고 단정해 공시송달 방법으로 송달을 하고 피고인의 진술 없이 판결을 선고했다"며 "이는 형사소송법이 정한 공시송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피고인에게 출석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것으로 소송절차가 법령에 위배돼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또 피고인이 재판 진행 사실을 알면서도 주소 변경 신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잘못된 공시송달에 근거해 재판이 진행된 이상 상소 제기 기간 내 불복하지 못한 데 대해 피고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