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권익위원회가 6·25전쟁 발발 76주년을 맞아 1951년 1월1일 경기도 양주지구 전투에서 전사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고 김선일 소령 추모식을 개최했다고 25일 밝혔다.
권익위는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김 소령 추모식을 개최하고 국가보훈부는 국가유공자 증서를 김 소령에게 헌정했다. 김 소령은 6·25전쟁 발발 직후 최전선에서 전장을 누볐지만 지난해 8월 김 소령의 외조카 A씨가 권익위에 고충민원을 제기하기 전까지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A씨는 당시 "외삼촌이 6·25 전쟁 때 전사해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음에도 등록을 신청할 유가족이 없어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권익위에 알렸다. 권익위는 관계기관 자료 조회와 의견 수렴에 착수해 지난해 11월 김 소령이 국가유공자 미등록 상태라는 점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권익위는 김 소령 민원을 계기로 올해 1월 6·25 무연고전몰군경의 국가유공자 직권등록을 위한 기획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국가보훈부는 관계 법령에 따라 직계 유가족이 없는 경우 정부 직권으로 국가유공자 등록이 가능하다는 검토 결과를 회신했다. 이에 따라 올해 6월 김 소령의 국가유공자 직권등록이 확정됐다.
전사 75년 만에 구가유공자가 된 김 소령은 1921년 7월24일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에서 태어났다. 결혼 후 임신한 아내를 고향 의주에 남겨둔 채 1947년 단신으로 남하해 육군사관학교(제8기)에 입학했다. 이후 1949년 5월23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육군 제1사단 제15연대에 소속으로 개성·문산·봉일천 방어작전, 낙동강 방어선 다부동 전투, 평양 탈환 작전, 운산 북방 중공군 격퇴 등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1951년 1월1일, 태천·평양·고랑포를 경유하는 철수작전 중 경기도 양주지구 전투에서 29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정부는 그의 전쟁 공헌과 살신보국 정신을 기려 충무무공훈장(중위, 1950년)과 화랑무공훈장(대위, 1951년)을 수여했다. 2021년 12월에는 대위에서 소령으로 추서됐다.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55묘역 8판 2655호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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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임신한 아내는 고향 의주에 남겨진 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생이별했고 직계 유가족이 없어 국가유공자 신청 자체가 이뤄지지 못했다.
앞으로 권익위와 보훈부는 김 소령 사례에서 드러난 국가유공자 등록 관련 제도 공백을 구조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국립묘지 등에 안장된 6·25 무연고전몰군경의 국가유공자 직권등록을 위한 범정부추진단 구성·출범을 추진한다.
정일연 권익위원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잊힌 분들이 아직 많다"며 "국가는 그분들을 끝까지 찾아 합당한 예우를 드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수조사와 범정부추진단을 통해 단 한 분의 전쟁영웅도 빠짐없이 국가유공자에 등록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