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진의 스토리 클래식] 흰눈처럼 가녀린 주인공 대신 육중한 소프라노가...
올해 2월 19일은 24절기 중 '우수'(雨水)에 해당한다. 러시아 유학시절에는 추석이나 설날 같은 큰 명절조차 챙기지 못하고 지날 때가 많았지만, 요즘은 달력을 보고 있노라면 의미도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름의 절기가 눈이 띈다.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우수'는 추운 겨울이 가고 드디어 봄을 맞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우수 뒤에 얼음같이'라는 속담은 얼음이 슬슬 녹아 없어짐을 이른다는 것도 알게 됐다.
우수의 뜻을 확인하니 순간적으로 오페라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바로 러시아의 음악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1881년 작으로 서정성이 뛰어난 오페라 '눈처녀'(The Snow Maiden)이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극작가 알렉산드르 오스트롭스키(1823-1886)가 쓴 동화 '눈처녀'(Snegurochka, 스네구로치카)를 처음 읽었을 때 큰 감동을 받지 못했지만 1879년 겨울에 다시 읽었을 때는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난 스네구로치카를 다시 한 번 읽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시적 묘사가 있다니! 이 동화야 말로 오페라의 시나리오로 가장 적합해! 스네구로치카(눈처녀), 렐(눈처녀가 사랑한 목동), 베스나(봄의 요정인 눈처녀의 엄마), 이 세 명 모두 환상적인 이미지의 주인공들이야!"
1880년 여름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두메산골에서 '눈처녀'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후에 그는 이만큼 단숨에 쉽게 쓴 작품은 없다고 말했다. 바로 이듬해, 프롤로그와 4막으로 이루어진 오페라가 완성됐고 작곡을 시작한지 2년이 채 안된 1882년 1월에 뻬쩨르부르크에 있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했다.
이 때 서리 할아버지 역을 현대음악의 거장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의 아버지인 표도르 스트라빈스키(1843-1902)가 맡았다.
'눈처녀'의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원작자 알렉산드르 오스트롭스키 역시 매우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의 스네구로치카에 이렇게 놀라운 음악을 만들어 내다니! 내 작품에 이렇게 딱 들어맞는 곡을 만들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눈처녀'의 모든 주인공을 정확하게 묘사해 책 속의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또 옛 러시아의 태양신숭배 같은 무속 신앙의 시적인 모습을 음악으로 정확히 표현하는 데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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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눈처녀는 서리 할아버지와 봄의 요정 사이에 태어난 딸로 인간세계를 동경한다. 환상의 왕국 베렌데이에 살고 있는 목동 렐의 노래를 사랑하게 돼 15살이 되던 해 베렌데이의 가난한 노부부의 양녀가 되고자 자청한다. 사랑에 빠지면 목숨을 잃게 되는 자신의 운명을 모른 채 눈처녀는 목동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봄의 여신에게 간청한다. 그 마음을 얻게 되지만 결국 초여름 태양신의 빛을 받아 죽는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한 것은 살아있는 절대 전능한 '자연의 힘' 그리고 인간이 지향하는 것은 언제나 '행복'이라는 것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러시아 민요를 듣고 채보한 민요조를 많이 담았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 '눈처녀'에 얽힌 재미있는 비밀이 있다. 바로 오페라에서 노래하는 소프라노 가수들에 관한 것이다. 오페라는 음악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눈으로도 즐기는 장르인데, 당시 많은 오페라 여가수들은 육중한 몸매를 자랑했다. 그래서 여리고 가녀린 모습은 어디에도 없는 뚱뚱한 모습의 눈처녀가 무대를 뛰어다녔다고 한다.
특히 사랑을 알게 된 후에 뜨거운 초여름 태양에 녹아죽는 마지막 장면은 그 어느 때보다 절절하고 애틋한 장면인데 육중한 소프라노 가수의 연기 때문에 몰입이 안되어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와 급히 입을 틀어막고 웃음소리를 조절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일까? 오페라 '눈처녀'는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과 뻬쩨르부르그 마린스키 극장의 레퍼토리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진귀한 프로그램이 됐다.

바이올리니스트 송원진은...
오랜 시간 러시아에서 수학한 바이올리니스트 송원진은 러시아의 광활하고 음울한 음악세계를 강렬하고 단호한 열기로 지극히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열정적인 연주자로 정평이 나있다. 현재 서울예고 출강,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예원학교 시절 러시아 유학
-모스크바에서 17년 유학
-모스크바 국립 차이콥스키 음악원 부속 중앙음악전문학교 졸업
-모스크바 국립 차이콥스키 음악원 졸업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제 27회 주목할 예술가상' 수상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두루미 연주 대음
-G20 청와대 연주
-김연아 아이스쇼 '죽음의 무도' 연주
-음악 에세이 '불멸의 사랑 이야기' 저자
-한옥 속 클래식콘서트 '불멸의 사랑 이야기' 기획&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