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프라임필하모닉 지휘자 여자경 "작곡가의 호흡까지 살리고 싶어요"

지휘자 여자경은 '완벽'을 추구했다.
스스로 완벽주의자라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내게 주어진 건, 열이면 열 다 잘하고 싶다"고 말할 때 강렬한 그의 눈빛이 그렇게 말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 짙게 그려 올린 눈썹, 지휘봉을 든 그의 카리스마는 마주한 이를 압도하고도 남을 만 했다.
연습을 위해 모인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의 표정과 손짓을 따라가며 연주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지 않고는 소리가 미세하게만 달라도 될 때까지 다시 연습을 시키고, 어긋난 부분은 몇 번이고 꼬집어내는 지휘자의 호흡에 따라갈 수가 없다.
오케스트라 단원들 중에는 지휘자보다 어려보이는 연주자들이 많긴 하지만 비슷한 연배나 머리가 희끗희끗해 연륜이 느껴지는 연주자도 여럿 눈에 띄었다. 하지만 지휘자의 지시 아래 엄숙하게 음악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연습실을 집중도와 긴장감으로 가득 채워 발걸음 하나 떼는 것마저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오케스트라에 있어 지휘자는 실로 대단한 위치다. 막중한 책임감과 리더십이 요구되는 기업의 CEO와 비슷하기도 하다. 그런 리더의 자리에 있는 지휘자 여자경을 수식하는 단어로 '여성'이 늘 붙곤 한다. 서양음악사에서 작곡가나 연주자, 지휘자가 모두 남자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지휘, 남자의 영역 맞아요"라고 아주 명쾌하게 말했다. 남자의 영역에 우뚝 선 여성 지휘자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어떨까. 우문인줄 알면서도 혹시 관객들이 듣기에 마에스트로가 아닌 마에스트라가 이끄는 연주의 특별한 관전 포인트가 있는지 물었다. 역시 지휘자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초창기 지휘봉을 잡았을 때는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여성 지휘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그걸 넘어야 하는 관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여자라는 것 때문에 연주나 리허설 할 때 힘들다거나 좋은 점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럼 여자경이 지휘하는 음악의 색깔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그는 곡을 연주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롱 프레이즈'(long phrase, 긴 악절)를 꼽았다. "음표나 박자를 정확하게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많지만, 악절의 톤 컬러와 호흡을 작곡가의 의도대로 정확하게 살려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정확하고 섬세한 연주를 위해 여자경은 집에 돌아가서도 끊임없이 공부한다. 그는 "공부를 안 하면 불안하고, 일단 지휘자가 준비가 돼 있어야 연습도 되고 리허설도 된다"며 "이미 연주했던 곡도 장소나 연주자들에 따라 또 다르기 때문에 계속 공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사가 너무 열심히 하면 아래 있는 사람들이 힘들기 마련, 지휘자가 이정도면 프라임필하모닉 단원들도 기본적으로 노력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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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삶과 함께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의 엄마로서의 책임감도 크게 느낀다. "딸이라서 아침에 등교 준비할 때 머리도 빗겨줘야 하고 손이 많이 가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새롭게 배우는 인생이 무궁무진한 것 같다"는 그의 얼굴에 좀 전과는 또 다른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아이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지만, 그의 성격을 보면 여느 열성 엄마 못지않게 충분히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여자경은 17일 오후 7시, 예술의 전당에서 MTN과 함께하는 빈 필 플루트 수석 발터 아우어 초청 음악회에서 지휘한다. "난 욕심이 좀 있어요, 많아요, 지금 내 범위 안에 들어와 있는 건 정말 최선을 다해서 다 잘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지휘자 여자경은...
한양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지휘과에서 박은성 교수를 사사하면서 지휘에 입문했다. 이후 오스트리아 비엔나국립음대에서 유학하고, 2005년에는 빈 필의 신년음악회가 매년 열리는 뮤직페어라인 황금홀에서 빈 라디오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심사위원 만장일치 최고점수를 얻어 '마기스터'(Magister, 석사)를 획득했다.
2008년 러시아 프로코피에프 국제지휘콩쿠르에서 3등을 수상해 여성 최초의 수상자 명단에 올랐고, 수원국제지휘콩쿠르, 스페인 코르토바 국제지휘콩쿠르, 체코 프라하 국제지휘콩쿠르 등에서 입상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KBS교향악단, 코리안심포니, 대구시립교향악단 등을 지휘했고, 유럽에서는 빈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Wien Radio Symphony Orchestra, RSO) 등 유럽 각지 유명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연주자들로부터 '같이 연주하고 싶은 지휘자'라는 평가를 받아 유럽과 한국의 여러 오케스트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현재 한양대 음대에 출강 중이며,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전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