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대선 정국 속에서 단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대기업의 개혁에 관한 공약이다. 각 대선후보들은 구체적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대기업 특히 재벌에 대한 규제를 더욱 더 강화하여야 한다는 점에는 생각을 함께 하고 있다. 정치권의 이러한 개혁의지는 대기업이 한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는 토대가 된 경제발전에 기여하였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사회의 양극화나 승자독식의 현상을 확대하는데도 책임이 있다는 우리 국민의 복합적인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대기업에 대한 점증하는 비판은 어쩌면 전 세계 어떤 국가도 보여주지 못한 한국의 압축성장이 만들어낸 그늘일 수 있다. 물질적 생활의 향상이라는 오로지 하나의 가치에 전념하였던 성장 중심의 시대의 주요 행위자였던 기업에게는 어쩔 수 없는 원죄며 업보일지도 모른다.
대선 후보들의 과거 행적에 관련된 논란들이 대선정국의 주요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는 것도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후보의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과오에 대한 책임소재 논란, 문재인 후보의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의 논란에 대한 책임, 안철수 후보의 다운계약서 및 재개발 아파트입주권(딱지)거래 의혹 등도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업보가 아닐까.
어떻게 원죄 혹은 업보를 극복할 것인가.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원죄처럼 이러한 원죄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고 신의 뜻에 의해서만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인간은 나쁜 짓은 할 수 있지만 스스로는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기업이 마치 원죄처럼 기업은 나쁜 행동만 할 수 있을 뿐이고 기업 스스로의 힘으로는 올바른 일을 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마치 신처럼) 각종 규제를 더욱 더 촘촘히 만들자는 것이다.
윤리학에서 옳고 그름에 관한 기준이 문화마다 시대마다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윤리적 상대주의라고 부른다. 과거의 관행이었다, 혹은 그 당시에는 그러한 행동이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등의 변명은 윤리적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만약 윤리적 상대주의가 올바른 것이라면 윤리라는 것은 특정 사회 특정 시대의 구성원 다수가 옳다고 믿는 바에 불과하게 되면 따라서 어떠한 행위도 용납된다.
그러나 도덕적 기준의 절대성을 믿는 학자들이 훨씬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시대와 사회를 초월하여 인간이 옳다고 믿어야 하는 도덕적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황에 따라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행동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같은 기준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 기준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즉 사실이나 배경 등에 따라 구체적 실천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판단의 상대주의라고 부른다.
대기업의 원죄를 극복하는 방법은 기업 스스로 무엇이 옳은 것인지 분명히 밝히고 그러한 가치에 걸맞는 행동을 구체적으로 지속적으로 시행하는 것뿐이다. 윤리적 상대주의에 입각하여 모든 잘못을 상황에 돌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에 입각한 결정과 행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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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경영학회에서 발표된 연구에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활동으로서 어떤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사회 속의 여러 참여자(즉 정부, 시민사회, 고객 등)들과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여야 한다는 '상호거버넌스'(mutual governance)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의 구체적 모습이 특정 국가의 정책이나 가치관을 넘어서서 국제적인 기준과 가치관을 반영하면서 만들어져야 주장이 힘을 얻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과거에 저지른 악한 행위로 말미암아 현재에 받는 괴로움인 업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선을 쌓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점증하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변명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회공헌을 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