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뮤지컬 '원캐스팅'이 낯선이유

[기자수첩]뮤지컬 '원캐스팅'이 낯선이유

이언주 기자
2012.11.20 17:49

"더블캐스팅 정도까진 오케이, 그런데 다섯 명까지 하는 건 너무하잖아요."

한국에서 '뮤지컬 제작의 장인'으로 꼽히는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는 공연 회차에 따라 여러 배우들이 번갈아가며 공연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는 최근 공연계 분위기에 대해 혀끝을 찼다.

장기공연일 경우 더블캐스팅(한 배역을 두 명의 배우가 맡는 것)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최근에는 주연의 경우 트리플(3명)을 넘어 4~5명씩 번갈아 공연하는 실정이다. 그 4~5명 중에는 '스타캐스팅'이 포함되는데, 티켓파워가 있는 스타배우를 영입하면 그가 출연하는 공연 회차는 매진이 되곤 한다. 그야말로 '마케팅 참 잘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박 대표는 "최근 10년 사이에 세계명품뮤지컬들이 국내에 다 들어왔는데, 뮤지컬시장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공연으로 돈벌이만 하려는 제작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 뮤지컬의 메카라 불리는 브로드웨이에서도 100년 넘게 고수하고 있는 '원캐스팅'(하나의 배역을 한 명의 배우가 맡는 것)이 한국에서는 오히려 낯설다는 것. 박 대표는 "그들이 원캐스팅을 고집하는 건, 그렇게 해서 힘든 점 보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유리한 점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혹자는 "좋아하는 배우를 골라보는 재미도 있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보통 한 작품을 올리기 전에 6~8주가량 연습과 리허설을 반복한다. 이 시간은 배우들이 대본을 외우는 기간이 아니다.

이미 개인적인 연습을 충분히 한 후에 다른 배우들, 스태프들과 만나서 섬세한 호흡을 맞추며 작품을 완성시켜 나가는 기간이다. 뮤지컬 장르는 개인기 보다 서로의 호흡과 앙상블(조화)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공 배역이 5명씩 되면 리허설 시간은 5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이다. 관객들은 그만큼 연습이 덜 된 공연을 볼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어버전으로 개막한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1년 이상 공연이 예정되어 있으면서도 '원캐스팅'을 고집해 이슈가 됐다. 이 배우들은 공연에 앞서 연습실에서 7주, 무대에서 3주간을 살다시피 했다. 첫 무대였지만 다른 뮤지컬의 마지막 공연을 보는 듯 완성도와 배우들 간의 호흡이 훌륭했다.

박 대표는 "대중성과 인지도를 만드는 것은 제2의 창작"이라고 말했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스타를 돌려막기 하듯 무대에 세우지 말고 작품 자체로 승부를 걸어,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스타를 쫓아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는 이른바 '회전문 관객'들이 과연 10년 후에도 계속 뮤지컬 팬으로 남을 수 있을지 공연계에선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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