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검은콩국수와 '와신상담'

지금까지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은 있어도, 딱히 앉고 싶은 자리는 별로 없었던 건 같은데요, 딱 한 번, 가고 싶은 자리가 있었지요. 바로 교대 교수였습니다.
이십대 초반에서 사십대가 되기까지 교사로 참 열심히 살았지요. 전교조도, 공부도, 어린이문학도 떳떳하고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였던 거고요. 그런데 어쩌다가 과분하게 욕심을 내다보니 학교에 제가 설 자리가 없어진 거예요. 그 전엔 학교일을 거의 도맡아하다시피 했는데 말이지요. 물론 석박사 과정 모두 주말과 야간에 수업을 하면서 학교에는 최대한 피해와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지만, 박사 과정 들어가면서 교대 강의까지 맡다보니 담임을 맡을 수가 없었고, 학교일도 예전처럼 주도적으로 할 수 없었던 거지요. 후배들을 위해서도 그래서는 안 되는 거고요.
학위를 받고나서는 아예 대놓고 부담스러워하며 열외로 치는 분위기여서 학교가 바늘방석에 앉은 듯 참 불편하더군요. 그때 든 생각이 세상 만물이 다 제 자리에 있어야 순탄하고 평화로운 거로구나, 싶었지요. 그러나 아시다시피, 국립대 교수 자리가 어디 그렇게 쉽게 갈 수 있는 자리이던가요. 그렇다고 이 나이에 경력도 인정해주지 않는 사립대로 갈 수도 없는 처지고요. 학교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애들을 봐서도 그럴 수가 없었지요. 그렇잖아도 큰애는 어릴 때 해직된 백수 아버지를 오년이나 지켜봤는데 말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승진을 준비해볼까도 싶었지만, 그 또한 동료교사들의 승진경쟁에 뒤늦게 끼어들어 민폐를 끼치는 일일 테고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다가 찾은 돌파구가 바로 지금의 교육전문직이었던 거지요. 동료들한테 피해 줄 일도 없고, 내 능력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전공과 다른 일도 아니니까요.(제 학위가 문학이 아니라 교육학이거든요.) 그래서 전문직 시험을 쳤던 것인데......,이 말 하려고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은 건 아니고요,
사실은, 갑자기 대학교수 그거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대학교수도 일부를 제외하곤 텍스트를 직접 생산하지 못하고 남의 텍스트로 가르치기만 할 테지만, 저는 명색이 시인이니 텍스트 생산자잖아요. 그리고 시답잖은 거지만 평론에다 시사 글까지 써서 언제 어디에든 발표할 수 있으니, 굳이 이런 제게 지정된 전문 강단이 필요한 것이 아니지 않겠어요? 저 보고 교수라 칭하는 온라인 친구들이 더러 있던데 저 교수 전혀 부럽지 않은 시인이거든요. 시인이라고요, 허허.
오늘 저녁엔 검은콩국수 한 그릇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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