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주 기자의 공연 박스오피스]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 한지상, 물오른 연기
뻔하지 않아 '펀'(Fun)한 영웅이야기

한량 역할이 어찌나 몸에 착착 감기는지, 그야말로 무대와 객석을 들었다 놨다하며 자유자재로 '노는구나' 싶다. 툭툭 던지는데 쏙쏙 꽂힌다. '연기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배우의 자연스러움은 관객을 극 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한다.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 무대를 올린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에서 퍼시와 스칼렛 핌퍼넬 역을 맡은 배우 한지상. 연기에 물이 올랐다. 영국 귀족의 우아함, 정의로운 영웅, 사랑을 지키려는 순정, 위트와 장난기로 포장한 이중생활 등 대조되는 모습들을 넘나들며 팔색조 매력을 펼치는 그의 재치와 순발력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한지상이 이번 작품에서 내뱉는 대사나 몸짓에는 다른 배우가 하지 않는, 그의 감각으로 새롭게 만들어 나온 것들이 꽤 보였다.
그는 앞서 출연했던 뮤지컬에서 '유다'(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게이브'(넥스트 투 노멀) '도완득'(완득이) 역 등 사랑에 굶주린 결핍된 인물들을 연속해서 연기했다. 그런데 이번엔 민중을 보살피며 사랑을 주는 영웅이다.
영국 극작가 바로네스 오르치의 고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칼렛 핌퍼넬>은 배트맨, 조로, 스파이더맨, 슈퍼맨의 원조 격이다. 낮에는 화려한 한량 영국 귀족으로, 밤에는 프랑스 공포정권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구출하는 비밀결사대 수장으로 활동한 영웅의 이야기. 인간적이며 유머와 패션 감각이 살아있는, 요즘 여성관객들이 딱 좋아할만한 스타일이다. 그런데 왜 남자이름이 '스칼렛'인가 궁금할 수 있는데, '스칼렛 핌퍼넬'은 '별봄맞이꽃'이라는 꽃 이름에서 따 온 것. 비밀결사대는 이 꽃 문장이 찍힌 쪽지로 소통한다.
진부한 영웅 이야기는 자칫 유치하거나 뻔한 결말로 흘러갈 수 있는데, 한지상을 비롯한 6인의 동지역을 맡은 배우들의 활약이 관객의 몰입을 이끌고, 때론 큰 웃음을 주기도 한다. 화려한 의상과 세련된 조명, 가면무도회 장면을 비롯한 18세기 유럽의 시대상황을 살린 감각적인 무대는 전혀 새로운 건 아니었으나 볼거리를 제공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확 꽂히는 노래 한 곡이 없다는 것. 국민 뮤지컬넘버가 된 '지금 이 순간'을 남겨준 <지킬 앤 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을 해서 음악에 대한 기대가 무엇보다 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에 녹아든 음악적 감각은 그의 색깔이 분명히 묻어났다. 몰아치는 듯 속도감 있는 웅장하고 풍부한 선율, 감미로운 듀엣 곡 등은 작품에 어울렸고, 앙상블(조연)들의 합창은 극을 든든하게 받쳐주며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다.
결론은, 2시간 30분(인터미션 제외)이라는 공연시간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으나 뮤지컬 좀 본다는 관객이라면 한번 쯤 챙겨볼만하다. 그래서 단 1회 관람을 위한 캐스트를 굳이 추천하자면 한지상(퍼시&스칼렛핌퍼넬)·바다(마그리트)·양준모(쇼블랑).
독자들의 PICK!
양준모는 '역시 악역 전담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쇼블랑 역을 잘 소화했고, 마그리트 역의 바다는 특유의 풍부한 감성과 매력적인 목소리로 사랑을 지키려는 여인을 잘 묘사했다. 그런데 한지상의 능청스런 연기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가수 정재형이 떠오르던데, 코믹과 진지함 사이에 비친 유럽풍의 매력 때문일까.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데이빗 스완 연출. 구소영 음악 슈퍼바이저. 이지원 음악감독. 박건형·박광현·한지상·김선영·바다·양준모·에녹 등 출연. 9월 8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5만~13만 원. 1577-3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