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만둣국과 송편, '추석'

결혼 전에는 아버지가 계시던 김해에 가서 기제사나 명절 차례를 지냈지만, 결혼 하고나서는 장손인 제가 잠시 모셨더랬지요. 그래서 명절이나 기일에는 아버지께서 저 사는 거창으로 오셨던 건데요. 밤늦게 올리는 기제사 때는 차편이 끊겨 어쩔 수 없이 단칸방에서 잠시 눈을 붙이시고 가셨지만, 아침나절에 지내는 명절 차례 때는 새벽차로 오셔서 차례 상을 물리자마자 휑하니 일어서 떠나시곤 하셨지요. 마침 제가 학교에서 해직된 상태였고, 아내와도 마찰이 잦았던 때여서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하셨을 테니까요.
그렇게 두세 해 지냈던가요. 아우가 결혼하고 나서는 기제사와 명절 차례를 모두 아우네로 보냈던 거지요. 지금도 명절 차례나 기제사를 김해 아우 집에 가서 모시는데요, 마치 생전의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내막과 사정이 이러니 그때나 지금이나 말이 집안의 종손이고 장손이지 그 구실을 못하는 건 마찬가지지요. 그래도 이렇게나마 체면을 유지하고 사는 것은 순전히 이 형한테 한 번도 험악하게 대들지 않고 오히려 못난 형을 뒷바라지하며 묵묵히 집안일을 챙겼던 제 아우 덕분인데요. 그래도 제수씨는 이런 집안 형편이 못마땅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싫은 기색 없이 제게도 늘 살갑게 대하며 따르는 걸 보면, 이 또한 부모님이 제게 물려주신 더없이 소중한 유산으로 여겨지는 거지요. 사업 하는 아우가 집에만 들어가면 휴대폰을 꺼놓고 전화를 받지 않는 것도 이런 착한 제수씨에 대한 배려 아니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