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보리새우와 문어호박국, '밑천'

강의를, 특히 다수를 상대로 강연을 할 때는 원고 없이, 또는 원고를 무시하고 마치 즉석연설하듯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참 어이없지요? 스스로도 자만심을 넘어선 무모한 짓이라는 걸 알지만, 딴에는 고육지책이라고나 할까요.
어렸을 때는 도통 말재주가 없는 데다 말을 더듬기조차 해서 여러 사람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했거든요. 그런 데다 말하기 전에 미리 말할 내용을 적거나 머릿속에 저장한 채, 말을 하게 되면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말들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는 거예요. 커서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요. 그래서 나름대로 마련한 고육책이 일단 강의를 하든지 연설을 하든지 무엇을 얘기할 건지 정도는 구상해두되 자세한 원고는 쓰지 않는 거였어요. 막상 손에 든 원고에는 큰 제목만 몇 개 적어두고요. 요즘은 소제목과 꼭 필요한 텍스트만 피피티자료로 만들어 그걸 강의안으로 삼곤 하는데요. 물론 사전에 원고를 요구하는 경우엔 강의안을 써서 보내긴 합니다만. 그렇더라도 실제 강의는 원고에 크게 집착하지 않고 하는 거지요.
사실 이게 제 나름의 강의관이기도 한데요. 저는 강의를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강사와 청중의 소통, 즉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보거든요. 그래서 원고에 얽매이지 않고 현장에서 직접 맞닥뜨린 상황과 청중에 맞춰 강의를 진행하려는 건데요,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겠지요?
흔히 ‘오도리’라고 하는 보리새우는 죽어서도 요렇게 사랑을 표현하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