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소야, 울지마 저기 있잖아, 봄
[편집자주] "나는 세상의 풍경을 읽는 자가 아니라 풍경 속의 일부가 되어 풍경과 나란히 걷고 있는 자이다."(김주대 시인)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는 얇디 얇은 울림판 같은 몸을 가진 그는 모든 존재를 의미 있는 기호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는 풍경 속에서, 거대하게는 우주의 근원에서 솟구쳐 오르는 어떤 징후를 감지하고 광인처럼 소리치는 사람이다. 생의 우연한 순간에 마주친 모든 존재가 그에게 가서 그림이 되고 시가 된다. 그의 문인화가 특별한 이유이다.

입춘이 지난 지가 벌써 열흘이 넘었다. 폭설 소식에도 불구하고 긴 겨울은 끝나가고 있다. 비유가 아니라 자연의 실재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우리들 마음의 들녘에서도 겨울이 떠났으면 좋겠다. 해마다 봄이면 으레껏 하는 이야기들이라고는 해도 올해는 유난히 봄이 그립다.
득도의 과정을 소와 사람으로 설명한 그림인 ‘심우도’에 나오는 소는 ‘마음의 소’를 뜻한다. 천지에 아무리 봄이 와도 마음에 봄이 오지 않는다면 다 소용없는 일 아니겠는가. 욕망이 콘크리트 숲을 이룬 서울이란 도시에서 파릇한 봄의 싹을 찾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우리들 마음의 소가 새싹을 찾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콘크리트바닥이든 빌딩 꼭대기든 마음의 봄을 찾아가는 일은 결국 천지자연의 질서에 이르는 길이기도 하겠다. 일과를 끝내고 따스한 먹거리를 사서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의 모습이 바로 봄을 찾아가는 소의 모습은 아닐까. 크게는, 부정하고 간사한 일체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 그것 역시 빌딩 꼭대기에서 연푸른 새싹을 찾아가는 소의 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