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타악기 거장' 류복성, 15일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57주년 기념 콘서트

“배운 게 음악밖에 없었으니까. 비즈니스도 모르고, 사람과 친해지는 법도 몰랐어요. 그냥 재즈만 사랑하고 살았어요. 재즈가 곧 제 애인이고, 인생이었죠.”
올해 데뷔 57주년을 맞은 타악기 연주자 류복성(74)은 재즈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높이며 삿대질(?)을 연방 해댔다.
재즈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재즈로 밥벌어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는 밥은 굶을지언정, 재즈는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재즈의 리듬 하나보고 드럼과 퍼커션(봉고, 콩가)에 반세기 넘는 세월을 투자한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타악기의 거장이다.
이제 후학을 양성하거나 무대 뒤편으로 사라질 법한 나이지만, 그는 노익장의 명예가 아닌 청춘의 힘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오는 15일 오후 7시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열리는 ‘류복성 재즈 콘서트’는 그의 재즈 인생을 오롯이 맛볼 수 있는 기회다.
그와 함께 하는 연주인의 면면도 화려하다. 국내 재즈 피아니스트 1인자인 김광민을 비롯해 말로(보컬), 손성제(색소폰), 정광진(트럼펫) 등 1급 뮤지션들이 류복성의 도우미로 나선다.
MBC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타이틀곡의 봉고 연주로 이름이 각인된 류복성은 미국의 재즈를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식단으로 개조해 대중화에 앞장섰다.
“재즈를 모르는 사람한테 들으라고 하면 그건 잘못된 거예요. 자신의 기호에 맞게 들어야죠. 그래서 한국 사람한테 맞는 재즈가 무엇인가를 늘 고민했어요. 그렇게 찾은 답이 재즈에 라틴 리듬을 섞은 겁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공부하기 싫어서 들어간 밴드부에서 그는 우연히 미 8군 라디오 방송(AFKN)에서 무슨 장르인지도 모르는 야릇한 음악을 듣고 ‘신의 계시’처럼 끌렸다. 그게 재즈라는 걸 알고, 미국 재즈잡지 다운비트 표지 모델의 이름을 죄다 외우고 재즈에 몰입했다. 어려운 재즈의 대중화를 꿈꾸던 그는 오리지널 재즈에 봉고 같은 타악기를 섞어 연주하는 방식을 오랫동안 모색해왔다. 그러던 차에, 미 8군에 세계적인 타악인 아기콜론이 방한하자, 그에게 “가르쳐달라”며 6개월간 따라다니며 배웠다.
“어려워도 확실한 느낌이 있는 음악을 좋아했어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음악은 아예 쳐다보질 않았죠. 라틴은 어려웠지만, 한국에 재즈를 알리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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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워커힐 호텔에 한국 최초의 재즈 클럽으로 불리는 힐탑바가 탄생했다. 류복성 재즈 밴드가 탄생한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재즈의 명인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68년 시민회관(현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전국경음악경연대회에 류복성이 이끄는 밴드가 참가했는데, 재즈 장르로는 유일한 참가자였다.
“신나게 연주하고 있는데, 심사위원 10명 중 한 명만 제외하고 모두 졸고있더라고요. 댄스와 트로트가 판을 치던 시대니까, 이해는 하고 있었죠. 그런데 미 8군 군악대장만이 혼자 일어나 춤췄는데, 그 사람만 만점을 줬어요.”
그렇게 그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이 후일담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다. 류복성은 “돌이켜보니, 그때 심사위원 9분이 너무 고마웠다”며 “나를 인정하고 점수를 줬다면 거만하게 음악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반세기 음악 생활에서 그가 가장 슬펐던 기억은 힐탑바를 그만두고 나이트클럽으로 옮겼는데, 한달만에 쫓겨난 일이었다. 나이트클럽에서 재즈 연주는 관객 모독의 극점이었기 때문. 돈벌이가 줄어들자, 그는 음악에 대한 분노와 좌절로 매일 술먹고 기물을 파손하고 다녔다. 파출소를 들락거릴 땐, “니들이 재즈를 알아?”하며 시비걸기 일쑤였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카지노 대부’로 알려진 전낙원씨가 재즈에 편견을 두지 않고 그를 자신의 호텔 무대에 마음껏 세워줬다는 것. 그는 “재즈는 늙게 하지 않는 힘이 있다”며 “그 자유로운 음악과 함께 한 인생은 참으로 행복했다”고 전했다.

이번 무대에서 그는 재즈에서 드문 5박자 곡인 데이브 브루벡의 ‘테이크 파이브’(Take Five)를 비롯해 ‘베사메 무초’(Besame Mucho) 등 비교적 쉽고 재미있는 곡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그는 “재즈는 경제 대국에서만 이룰 수 있는 음악”이라며 “한국의 재즈는 뿌리가 심어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재즈 애호가’로서 그의 마지막 소망은 무엇일까. “제게 한 평의 땅이 있다면, 거기에 초가집을 지어 류복성 재즈 박물관을 세우고 죽는 게 소망이에요. 더 많은 후원자가 있다면 대한민국 재즈박물관을 건립하고 싶어요. 너무 욕심이 컸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