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런던한국영화제' 만든 전혜정 집행위원장 "韓 아티스트 글로벌스타로"

이 사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한 술자리에서 만났다. 소위 ‘아줌마’필 강한 평범한 그에게서 ‘특별한 순간’들을 본 건 만난 지 채 5분도 되지 않았서였다.
지나가는 감독은 물론, 배우들이 ‘그’를 발견한 순간, 앞다퉈 옆자리에 앉아 인사했고, 그의 핸드폰 벨소리는 매 분마다 울렸다. 새벽 2시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 전날엔 ‘좌심방’ 김남길, ‘우심실’ 유연석을 자리에 앉히고 새벽 6시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정체가 무엇일까. 한번 만남으로 상대방을 블랙홀처럼 끌어들이는 독특한 매력의 소유자, 까칠하기로 소문난 박찬욱 감독이 전적으로 신뢰하고, 톱스타 이병헌이 ‘누나’라고 부르는 이 사람. 부산국제영화제급 규모로 런던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런던한국영화제'를 만든 전혜정(47·주영한국문화원 사업총괄 팀장) 집행위원장이다.
◇내달 6일 9회 런던한국영화제, '정우성 배우전' 등 60편 상영 예정
전 위원장은 2008년 주영한국문화원이 개설되기 2년 전인 2006년 ‘런던한국영화제’를 이미 만들었다. 몇 해 가지 못할 거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제는 올해 9회째를 맞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더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초창기 이 영화제를 다녀온 감독과 배우들로부터 퍼진 입소문이 단단한 신뢰로 구축된 셈.
한번은 전 위원장이 류승완 감독의 차를 얻어타면서 정우성과 함께 동승하게 됐는데, 정우성이 “저도 한번 런던에 초청해주세요”라고 먼저 ‘러브콜’을 보냈다. 오는 11월6일부터 15일까지 런던 레스터 스퀘어에서 열리는 ‘제9회 런던한국영화제’는 정우성이 참가하는 ‘정우성 배우전’을 비롯해 60편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첫회 11편에서 무려 6배나 성장한 기록이다.
“처음엔 영화제라기보다 영화행사로 시작했죠. 그 때 깨달음이 왔어요.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한 번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유럽최대문화복합기관인 바비칸센터를 찾아가 대관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뭐?”하며 무시하더라고요. 그렇게 지속적인 요청을 통해 2007년 2회부터 4회까지 이 곳에서 영화제를 열 수 있었어요.“
◇작가주의서 상업영화로 확대, 6000여명 중 80%가 현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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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엔 작가주의 중심의 영화가 대거 선보였지만, 5회부터 방향을 틀었다. 한국 영화, 나아가 한국 문화의 확산을 위해 상업 영화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장소도 영화관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레스터 스퀘어로 옮기고 김기덕·박찬욱 등 작가주의 감독의 작품에서 다양한 상업 영화 작품으로 장르를 넓혔다. 지역 영화제치고는 부산국제영화제급 못지 않은 규모와 수준으로 진화한 셈.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설득당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전 위원장이 설득해 일군 성과들은 손에 꼽기 힘들 정도다. 영화제 규모가 커지니, 호텔과 여행사 협찬이 필요해 몸소 뛰어다니며 ‘해결’한 것은 물론,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되레 더 적극적인 구애로 그와 일을 추진하려고 한다.

“글쎄요? 비결이라면 아마 팩트를 놓고 정면승부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 영화제는 영화 자체에 승부를 걸기보다는 영화를 통한 한국 문화 확산이 궁극적 목적이에요. 매년 영화제에 6000여명의 관객이 모이는데, 이 중 80%가 현지인이거든요. 그런 점 때문에 늘 솔직한 기획과 아이디어로 진심을 전달하려고 노력해요.”
지난 2012년엔 영화제에 앞서 3개년 기획도 추진했다. ‘12 감독전’(2012) ‘배우전’(2013) ‘한국영화를 만드는 사람들’(2014)을 통해 꾸준히 게스트를 초청했다. 이명세, 박광수, 송일곤, 임순례 등 감독들과 문소리, 최민식, 하정우 등 배우들이 단번에 이 기획전에 동참했다.
“제가 게스트를 초청하는 건 콘텐츠나 문화의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아티스트나 창작자를 존중해주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그들 역시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이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도록 만드는 게 기획자의 능력 아닐까요?”
그의 능력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유명한 일화는 2011년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런던 진출이다. 당시 영화제 개막 공연을 한국의 유명 아이돌 그룹의 무대로 채우고 싶었던 전 위원장은 무작정 SM엔터테인먼트를 찾아가 특유의 설득력으로 ‘런던 공연’을 처음으로 성사시켰다. SM 특유의 까다로운 조건에 성사가 불투명하기도 했으나, 진심과 강단, 현실적인 조건 등을 꾸준히 제시한 덕에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인연을 바탕으로 올해 영화제엔 슈퍼주니어의 동해와 은혁이 개막 공연에 참가한다.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한 전 위원장은 본인이 ‘아티스트’였다. 선화고 3년 내내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던 그는 어느날 소극장 무대 공연을 하면서 ‘딴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뒤 “무대에 덜 미친 내가 할 일이 못된다”는 걸 알고 유학을 준비했다. 2005년 영국에서 문화정책을 공부하던 그는 대사관이 주최한 문화행사를 잠깐 돕다가 지금의 역할을 맡게 됐다.
◇"영국 콩고물 묻혀 글로벌 스타로 성장시키는게 목표"
영화제를 본격 추진하면서 그는 부산국제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를 자비로 찾아다녔다. 카메라를 사서 직접 인터뷰에 나서는가 하면, 영화제 구성과 구조 등 디테일에 대한 노하우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그가 자신만의 차별화로 내세운 전략은 게스트에게 ‘빼곡한 스케줄’을 강요(?)하는 것이다.

“게스트를 부르면 대개 단편적인 질의응답으로 시간을 보내기 일쑨데, 저는 좀 더 확장된 시간을 통해 그들이 더 많은 걸 가져갈 수 있길 바랐어요. 인절미 같은 아티스트를 데려다 영국 콩고물을 묻혀 글로벌 스타로 만들어주는 게 제 임무이자 역할이라고 봤거든요. 그래서인지 한번 온 게스트들이 좋은 입소문을 널리 내주시는 것 같아요.”
내년 10주년 영화제엔 감독 중심의 특별 프로그램이 짜여진다. 최근 10년간 활발히 활동한 감독 10명을 초청해 여러 도시를 순회하는 코스가 준비돼있다. 이 과정에서 촬영감독을 붙여 10명 감독의 로드무비도 찍는다. 박찬욱 감독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박찬욱 감독 회고전’도 열린다.
“문화는 확산이 1차 목표라면, 2차는 침투라고 생각해요. 침투에는 소비가 필요한데, 소비재 문화에는 영화, 음악, 패션 이렇게 세가지 정도로 요약되더라고요. 그래서 2년 전부터 공연페스티벌과 런던패션위크에도 관심을 두고 있어요. 이 세 가지를 앞으로 ‘전공’으로 가져가고 싶어요. 역지사지 관점에서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시 원점에서 파악하는 정성을 기울일 겁니다.”
그의 핸드폰 벨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젠 그 풍경이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24시간은 아주 특별하고 고귀하게 쓰이고 있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