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민준호 대표…"배우의 예술이라는 무대의 정의에 충실”

공연을 앞둔 배우에게 첫사랑이 죽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순간 멍해진 그의 머릿속에는 첫사랑을 만났던 과거가 떠오르고 그 당시 가슴에 품었던 꿈들도 하나둘씩 펼쳐진다. 게임 중독에 빠진 한 소년이 배우가 되기까지 겪었던 과정들이 따뜻한 물에 찻잎이 천천히 우러나듯 조금씩 무대 위에 풀려나간다.
지난 1일 개막한 연극 ‘뜨거운 여름’은 한 남자가 열정이 가득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별할 것 없는, 튀지 않아 쉬이 눈길이 가지 않는 이야기들이 극을 한가득 채운다.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이하 간다)’의 연극은 공통적으로 지극히 평범하다. 손자가 할아버지의 은인을 찾아 나선다거나(‘나와 할아버지’) 고등부 유도선수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유도소년’) 식이다.
‘간다’의 작품에는 두 눈을 현혹시키는 스펙터클도 소위 잘나가는 배우를 앞세운 스타마케팅도 없다. 그러나 관객들의 반응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객석점유율 100%를 넘고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해 연장 공연에 돌입하는 등 ‘흥행 돌풍’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10년째 ‘간다’를 이끌어온 민준호 대표(37)가 있다.

극단은 지난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동문들의 모임에서 시작됐다. 간략할 간(簡)에 많을 다(多) 자를 붙여 “무겁지 않은 작품을 관객들에게 많이 배달하겠다”는 의미로 배우들이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연습실과 무대를 오가며 한 가족처럼 지낸 극단 식구들이 올해로 만난 지 꼭 10년이 됐다.
민 대표 역시 본업은 배우지만 극작과 연출에도 재능을 보이면서 여러 역할을 병행하게 됐다. 창단 10주년을 기념해 쓴 신작 ‘뜨거운 여름’은 그가 “처음 공연을 시작할 때의 초심을 일깨우기 위해 쓴 작품”이라고 했다. “공연을 통해 관객들을 웃기거나 혹은 울릴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진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민 대표는 작가이자 연출자로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뜨거운 여름’에 꾹꾹 눌러 담았다. 현실과 환상이 넘나들고 웃음과 슬픔이 교차하는 등 작품 곳곳에는 민준호답고 ‘간다’스러운 포인트들이 녹아있다. 그는 “다른 좋은 연출들을 닮아가지 않고 나만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민준호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오직 무대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늘 고민해요. 춤, 노래, 조명, 소품 같은 다양한 장치로 무대만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무대는 배우의 예술인만큼 무엇보다 배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부분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써요. 배우들이 뭔가 꾸며내서 연기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장점을 충분히 발휘해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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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은 요즘 공연계에서 유행하는 더블·트리플 캐스팅이 아닌 원 캐스팅으로 진행된다. “배우들이 역할에 빠져들었을 때 화학적으로 합이 잘 맞고, 관객들도 여기에 100% 몰입할 수 있다”는 민 대표의 생각 때문이다.
한 배역에 여러 명을 캐스팅할 경우, 배우들의 매력 위주로 작품이 짜이고 상대역이 바뀌면서 역할 간 호흡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는 게 그의 시각. 민 대표는 “특정 배우의 얼굴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에 빠져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관객을 조금 덜 불러도 좋으니 작품에 온전히 빠져들어 무대적 충격을 한 번이라도 전달할 수 있는 편이 훨씬 기쁘다”고도 했다.
“연극을 보는 관객들의 목적은 저마다 다를 거예요. 그냥 쇼를 보러 오는 사람도 있고, 감동을 달라고 하는 사람 있죠. 그런데 ‘간다’의 공연을 좋아해주시는 관객들은 단지 ‘재미’ 때문에 극장에 오시는 것 같지 않아요. 흔하지만 그냥 놓치기는 아까운 이야기를 소중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간다’의 방향은 계속 그렇게 지속될 겁니다.”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유는 3%의 소금 때문이다.” 작품 속 주인공이 내뱉는 평범한 대사처럼, 배우들은 3%의 '진짜 나'를 잃지 않고 무대에서 열정을 쏟는다. 이것이 민 대표와 ‘간다’ 배우들이 관객들의 마음에 배달하고 싶은 ‘뜨거움’이 아닐까. 입장료 3만5000원. 문의 02-744-4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