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근 새책] '프로이트의 카우치 스콧의 엉덩이 브론테의 무덤' 불경한 성지 순례

"셰익스피어가 태어났다는 방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유아용 침대가 있고 그 안에 인형이 누워 있는데, 아기라면 으레 이렇게 생겼으리라는 선입견에 충실한 모습이다. 부엌에는 플라스틱 닭 두 마리가 놓여 언제까지고 요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생가는 작가 사후에 '발명' 된 신전이다. 생전에 그다지 유명 작가가 아니었던 탓에 지도에도 등재되지 않았던 그 집은, 18세기에 어느 배우가 주최한 행사를 계기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를 되살린 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겐 대영제국의 국민 시인이 필요했고, 과거에 대한 자신들의 감정을 구현할 신전이 필요했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났다는 증거도 없고, 설령 잠시 살았다 한들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았을 것이 거의 틀림없는 그 집은 급기야 영국의 천재를 기리는 종교적 기념물이 되었다. 그곳의 풍경은 비극 전문 작가의 생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희극적이다.
모든 문학기행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곳을 직접 둘러보면 책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감동을 얻으리라는 것.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의문이 들 법도 하다. 그 장소들은 정말로 작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일까? 셰익스피어의 생가는 진정 인류의 걸작을 탄생시킨 창작의 요람이었을까?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작가는 직접 길을 나선다. 역사상 최초의 스타 작가였던 월터 스콧의 저택, 시인 워즈워스의 신화가 깃든 오두막, 전 세계의 숭배자들을 불러들이는 셰익스피어의 생가, 브론테 자매의 삶과 죽음을 고스란히 지켜본 하워스의 목사관 등등….
옛 순례자들과의 교감을 위해 19세기 방식(도보와 기차)으로 여행을 떠난 작가는 마치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탐정처럼 곳곳에서 정교한 문학적, 인문학적 현미경을 들이댄다. 거기에 비친 것은 문학영웅들의 성스러운 자취가 아니라 터무니없는 날조의 흔적들이다.
작가의 여정과 눈길을 좇다 보면 독자들은 문학기행을 '왜'하는가에 대한 해답뿐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까지도 함께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문학의 성지에 덧씌워진 베일을 벗겨 내는 불경스러운 순례기이며, 문학기행의 참된 가치와 방법을 알려 주는 충실한 안내서다.
◆프로이트의 카우치 스콧의 엉덩이 브론테의 무덤=사이먼 골드힐 지음, 최재봉 옮김, 뜨인돌 펴냄, 256쪽/1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