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교회 오빠?”…21세기 ‘처용가’에 대처하는 방법

“아는 교회 오빠?”…21세기 ‘처용가’에 대처하는 방법

김고금평 기자
2016.04.02 07:37

[따끈따끈 새책] ‘외롭지 않은 말’…77개 일상어를 통해 본 표면과 이면의 해석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의심의 관계를 해소하는 유일한 해답은 ‘교회 오빠’다. 여자 연예인들이 남자 친구와 같이 있는 장면을 들키면 십중팔구 “그냥 아는 교회 오빠예요”가 정답. 여기서 ‘그냥’과 ‘아는’, ‘교회’는 모두 같은 뜻이다. 세 번 같은 말을 반복했으니, ‘이보다 더 진실할 수 없다’는 확신이 서려 있을 수밖에 없다.

21세기 ‘처용가’가 ‘처형가’가 되지 않기 위해선 이렇게 내용을 바꿔도 될 법하다. ‘서울 밝은 달 아래 밤늦도록 노니 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아는 교회 오빠구나/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가/아, 그냥 교회 오빠거라니까!’

‘외롭지 않은 말’의 저자인 권혁웅 시인은 기발하고 영민하다. 주변에서 흔히 내뱉는 ‘일상어’를 흘겨 듣지 않고 겉뜻과 속뜻을 낱낱이 분석해 유머와 철학, 의미를 골고루 투영한다. 일상어가 ‘존재어’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교회 오빠’ 편은 그렇게 유머로 그치지 않는다. 이 단어의 출현은 교회의 독특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사도 바울의 이야기까지 끄집어낸다. 육신의 죄에 대한 가르침이 주는 순결 콤플렉스는 결국 ‘교회 오빠’라는 면죄부 성 발언을 통해 ‘나는 잠자리를 갖지 않았다’는 뜻을 전달하는 셈이다.

목욕탕 수건에 적힌 문구 ‘가져가지 마시오’의 겉뜻은 절도를 경고하지만, 속뜻은 사랑을 설명한다. ‘OO목욕탕’에서 ‘가져가지 마시오’를 거쳐 ‘훔친 수건’에 이르기까지 문구의 진화사를 따라가다 보면, 주인의 소유권에서 손님의 입장(마음을 ‘훔친’)을 대변하는 과정이 사랑을 암시한다는 얘기다.

수건 문구 하나에서 읽는 표면과 이면의 해석 확장성은 77개 일상어에 모두 녹아있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느냐’에서 겉뜻은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있느냐’의 신버전으로, 속뜻은 ‘아이폰 배터리 갈아 끼우는 소리 하네’의 구버전으로 해석된다.

뚱뚱해졌다고 걱정하는 ‘나 요즘 살쪘지?’의 속뜻은 사랑이 식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속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응답자라면 이런 식의 논리를 근사하게 대야 할지 모른다. “우리 몸은 똥배를 좋아하게 최적화됐어. 음식을 지방으로 바꿔 몸에 잘 저장한 인간만이 빙하기를 이기고 살아났거든. 우리는 그들의 후손이잖아. 당신은 진화의 정점이야.”

‘늙으면 죽어야지’를 노인들의 한탄으로만 읽었던 이들이라면 그것이 열렬히 누군가를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뜻이 숨겨있다는 사실을 새로 간파할 수 있다.

남녀 관계가 무르익어 빈방(?)에 들어간 자리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말 ‘난 자기가 처음이야’. 어디까지 해석해야 할까. 유일무이성에 기댄 고백일까, 당신이 몇 번째인지 셀 수 없다는 자백일까. 저자는 명쾌하게 이렇게 결론짓는다.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내 앞에 선 당신이 세 번째든 열일곱 번째든 대답은 한결같이 ‘당신이 내겐 처음이야’”라고.

이 책은 일상어, 즉 습관적으로 자주 쓰는 관용어를 새롭게 읽는 일상어 사전이다. 누구에겐 유치하고, 또 어떤 이에겐 식상 할 수 있는 이 일상어는 혼자만의 언어가 아니라는 점에서 교감과 공감의 메시지다. ‘여보세요?’라고 묻고 ‘여보세요’라고 답하는 ‘덤앤더머’식 대화의 반복성은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를 구원하며 외로움을 탈피하는 해결의 열쇠이기도 하다.

정현종 시인의 ‘섬’을 읽을 때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는 섬의 문학적 의미는 개별과 고독의 주체, 불완전한 자아의 고립 같은 어려운 철학적 명제로 수렴될지 모른다. 하지만 일상어 영역으로 들어오면 우리는 더 밝은 웃음으로 이 ‘문학’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 썸이 있다/그 썸을 타고 싶다’.

저자는 “일상어는 문학의 관점에서 가장 멀리 있는 ‘죽은 말’로 여기지만, 그것이야말로 삶의 현재형이자 표현형으로 문학과 동떨어질 수 없는 언어”라며 “같이 쓰는 일상어에선 더는 혼자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외롭지 않은 말=권혁웅 지음. 마음산책 펴냄. 268쪽/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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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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