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얻지만 ‘제대로’ 읽지 못하는…디지털 매체가 주는 ‘깊이 읽기’의 실패

‘많이’ 얻지만 ‘제대로’ 읽지 못하는…디지털 매체가 주는 ‘깊이 읽기’의 실패

김고금평 기자
2019.05.17 06:20

[따끈따끈 새책] ‘다시, 책으로’…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지금 디지털 세대의 정보 흡수력은 뛰어나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UCSD)의 정보산업센터 조사에 따르면 한 사람이 하루 동안 다양한 기기를 통해 소비하는 정보의 양은 약 34GB(기가바이트)로, 이는 10만 개 영어 단어에 가까운 양이다.

‘무엇이든 아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은 있지만, 실제 이를 기억하고 해독하고 깊이 통찰하는 능력도 병행할까.

저자는 밀도가 떨어지는 이런 식의 읽기는 연속적이거나 집중적인 읽기가 되지 못하고 가벼운 오락 거리에 그칠 뿐이라고 우려한다.

또 산호세 대학교 지밍 리우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디지털 기기를 통한 읽기의 한계도 지적한다. 디지털 읽기에서는 ‘훑어보기’가 표준방식으로 작동하는데, F자형 또는 지그재그로 텍스트상의 ‘단어 스팟’을 재빨리 훑어 맥락을 파악한 후 결론으로 직행하는 방식은 세부적인 줄거리를 기억하거나 주장의 논리적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종이책으로 읽은 학생들은 스크린으로 읽은 학생들보다 줄거리를 시간순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에서 더 뛰어났다는 노르웨이 학자 등의 연구결과도 있다. 이를 응용하면 오 헨리 단편소설집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시곗줄을 사주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팔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빗을 사주기 위해 자신이 아끼는 시계를 팔았다는 줄거리 속에 담긴 세부적 내용과 함의를 읽지 못하는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인간이 읽는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고 문해력은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강조해왔다. 특히 깊이 읽기는 독자가 문장에 담긴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타인의 관점으로 옮겨가게 도와주며 유추와 추론을 통한 비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의 엄청난 정보들은 편리함을 제공해주는 대신 주의집중과 깊이 있는 사고를 앗아갔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매체로 많이 읽을수록 우리의 뇌 회로도 디지털 특징을 더 많이 반영한다는 것이다.

뇌의 가소성으로 인해 인쇄물을 읽을 때도 디지털 매체 대하듯 단어를 듬성듬성 건너뛰며 읽고 비판적 사고와 반성, 공감과 이해, 개인적 성찰 같은 깊이 읽기가 주는 가치들을 잃어버릴지 모른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심지어 이 같은 읽기 방식은 글쓰기에 대한 선호까지 바꿔 더 짧고 단순하며 건너뛰어도 무방한 문장에 길들어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 자신도 비슷한 경험에 노출된 적이 있다. 책에 몰입하던 경험을 잃어버리고 ‘초보자 수준의 읽는 뇌’로 회귀하는 것을 깨달았다.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다시 읽으려 했지만, 디지털 읽기 방식에 익숙해진 자신의 뇌가 더 이상 길고 난해한 문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전문서적을 많이 읽고 상당한 지적 수준에 이른 독자라 해도 깊이 읽기 회로가 지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다.

인쇄 기반 문화에서 디지털 기반 문화로 급격히 변화한 사회에서 깊이 읽기의 능력은 회복할 수 없는 것일까. 저자가 제안하는 방식은 ‘양손잡이 읽기 뇌’의 개발이다. 인쇄 기반 읽기와 디지털 기반 읽기 능력을 모두 갖추도록 뇌를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처리할 정보는 늘어나는 반면, 이를 처리할 시간은 줄어드는 아이들에겐 상호의존적 읽기 회로의 학습이 중요하다.

저자는 “우리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집단적 양심을 보존하려고 한다면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깊이 읽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며 “특히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반성적 사유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우리 사회는 20세기 사회만큼 실패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책으로=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 어크로스 펴냄. 360쪽/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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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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