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로 읽는 시대감각] 왜 우리는 의미를 소비하는가

[전시로 읽는 시대감각] 왜 우리는 의미를 소비하는가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
2026.05.24 06:00

[키플랫폼 전문가 칼럼]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기획특별전 《글씨상점: 당신의 글씨, 당신의 취향》 전시장 중 1부 공간 /사진제공=국립세계문자박물관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기획특별전 《글씨상점: 당신의 글씨, 당신의 취향》 전시장 중 1부 공간 /사진제공=국립세계문자박물관

"우리는 전시를 보러 가는 걸까, 아니면 전시를 본 자신을 소비하러 가는 걸까."

전시장보다 굿즈샵이 먼저 붐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누군가는 박물관이 점점 쇼핑몰이 되어간다고 푸념한다. 설명문 앞에서는 오래 머물지 않지만, 머그컵과 엽서 앞에서는 쉽게 발길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품보다 포토존이 먼저 기억나는 전시도 많아졌다. 어떤 날은 전시장보다 쇼핑백이 더 오래 눈에 남는다. 사람들은 작품만 보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경험한 자신의 흔적까지 함께 들고 돌아간다.

몇 해 전, 전시가 막 끝난 늦은 저녁이었다. 관람객 대부분이 빠져나간 전시장 끝에서 한 여성 관램객이 엽서를 고르고 있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같은 그림 앞에서 망설였다. 작품 때문이 아니라, 그 그림이 인쇄된 작은 종이 한 장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 아니라 사람들이 잘 고르지 않는 엽서를 집어 들었다. 계산대 앞에서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이건 방에 두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물건이 아니라, 자기 삶의 풍경을 고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어떤 사람은 향수를 사고, 어떤 사람은 오래된 LP를 모은다. 누군가는 호텔 어메니티 병조차 쉽게 버리지 못한다. 중요한 건 물건 자체보다 그것이 자기 삶을 어떤 분위기로 남게 하는가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오래전부터 의미를 소비해 왔다. 순례자는 성물을 품에 안고 돌아왔고, 연인은 편지를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으며, 누군가는 오래된 영화 티켓을 지갑 속에 접어 넣고 다녔다. 대부분은 이미 쓸모를 잃은 것들이다. 그런데 사람은 이상하게도 필요 없는 물건을 가장 오래 간직한다. 어쩌면 인간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보다, 삶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들을 더 버리지 못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탬버린즈가 단순히 향수만 파는 공간이었다면 사람들은 쇼핑백을 들고 사진을 찍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향만 소비하지 않는다. 조명과 음악, 오브제와 공간의 분위기, 거울 앞에 선 자신의 장면까지 함께 소비한다. 그것은 단순한 취향이라기보다 "나는 이런 감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감각에 가깝다. 어쩌면 사람들은 향수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분위기에 어울리는 자신을 잠시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기획특별전 《글씨상점: 당신의 글씨, 당신의 취향》관람객들 /사진제공=국립세계문자박물관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기획특별전 《글씨상점: 당신의 글씨, 당신의 취향》관람객들 /사진제공=국립세계문자박물관

전시 역시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작품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전시를 경험한 감각까지 함께 소비한다. 전시장 안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은 단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이런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조용한 표현에 가깝다. 오늘날 사람들은 작품 자체보다, 그 작품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분위기를 더 오래 기억하려 한다.

최근 <글씨상점: 당신의 글씨, 당신의 취향> 전시를 열며 흥미로운 장면을 자주 보았다.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글씨를 고르며 "이 글씨는 꼭 내 성격 같다"고 말했다. 그 순간 사람들은 글씨를 읽는 것이 아니라, 글씨 안에서 자신의 분위기를 발견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날의 취향은 단순한 선택을 넘어,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에 가까워지고 있다. 사람들은 음악과 브랜드, 음식과 공간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려 한다. SNS와 기록 중심 문화 속에서 경험은 점점 '기억'보다 '증명'의 형태로 남는다.

그래서 오늘날의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전시를 통해 자기 취향과 감각을 확인하고, 자신이 어떤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설명한다. 박물관 역시 더 이상 유물을 오래 보관하는 공간에만 머물 수 없다. 앞으로의 박물관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보다, 어떤 감각과 질문을 오래 남길 것인가를 더 고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
이시종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

필자는 종합여성지 <Queen>과 월간 <문학사상>에서 편집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국립세계문자박물관 홍보디자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박물관 브랜딩과 전시 커뮤니케이션, 문화콘텐츠 기획 업무를 맡고 있으며 '콘텐츠는 인간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문화기관은 어떤 질문을 남겨야 하는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언론과 문화기관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콘텐츠와 인간의 관계를 시대 감각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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