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MT문고]'가호'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노르웨이의 숲'부터 '1Q84', '해변의 카프카' 등 명작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담담한 문체와 특유의 필력으로 초현실적인 소재와 난해한 구조를 버무려내는 솜씨가 수많은 팬들을 매료시켰다.
그의 신작 '가호'가 출간 2달도 안 돼 30만부를 팔아치우며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높은 인기를 입증한다. 20~30대 남성 주인공이 대부분이었던 하루키의 작품 중 최초로 여성 단독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출간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가호'는 주인공이자 그림책 작가인 26세 여성 '가호'의 이름에서 따온 제목이다. 그녀가 겪는 초자연적인 일들을 바탕으로 '좋은 이야기'에 대해 고찰했다. 거대한 이면 세계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마주하고 자신만의 서사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이 376쪽에 걸쳐 씌어 있다.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을 평이한 문장으로 직조해내는 하루키식 구성은 신작에서도 건재하다. 해석이 필요해 보이기까지 하는 내용이지만 반복해 읽다 보면 저자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독특한 등장인물, 대사도 흥미롭다.
책이 개미핥기나 흰개미 여왕, 코끼리 알 등 비현실적인 소재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것은 진정한 상상력이 갖는 의미다. 사회가 우리를 재단하게 내버려 두지 말고, 스스로의 독창적인 이야기를 상상해 내야 진정한 구원에 다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일견 신앙에 가까워 보이는 이 말이 작가 본인은 물론 독자들에게도 큰 울림을 남긴다.
그의 작품세계에 익숙하지 않다면 입문작으로는 부적합하다. 새로운 시도는 돋보이나 다소 겉도는 느낌이 들어 작품 안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쉽고 재미있다는 평가가 많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 보이는 대목이 있다.
결국 익숙한 '하루키 맛'이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주인공은 26세 여성의 탈을 쓰고 있지만 내면은 수없이 등장해 왔던 남성의 그것에 가깝다. 현실→이세계→현실이라는 전형적인 하루키식 구성도 기존 소설에서 약간만 형태를 바꿨다는 느낌을 준다.
◇가호, 문학동네, 1만 85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