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말할 의무, 듣지 않을 권리

[광화문] 말할 의무, 듣지 않을 권리

정희경 경제부장
2006.08.31 09:30

답답하다. `바다이야기' 파문을 수습하는 정부의 어설픈 대응이 그렇다. `권력형 게이트'가 아니라는 이유로 초기 당당한 모습을 보였으나 여론이 악화되자 뒤늦게 총리부터 줄줄이 사과하는 모양새는 볼썽사납다 못해 애처롭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3일 일부 언론인과 만나 "정책적 오류말고는 국민들한테 부끄러운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29일 한명숙 총리가 "사행성 게임이 확대되면서 서민생활과 서민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했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날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도 가세했다. 당정 수뇌부가 고개를 숙였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다. 노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릴레이 사과'가 나오기까지 보름간 상황이 급변했을까.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된 점을 제외하고는 파문의 `실체', 곧 정부 정책이 성인게임의 사행성을 높이는 데 한몫 했다는 점은 달라진 게 없다. 비판적인 여론을 청와대가 명명한 이른바 `정치언론'의 보도 탓이라고 치부하면 할 말이 없다.

지난주 만난 정부 고위 인사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무엇보다 정책의 실패가 있었고, 그 피해자가 서민이기 때문이라고 간결하게 설명했다. 사실 파문이 불거지기 전 이미 `바다이야기' 제작사 대표가 구속되는 등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만 감안하더라도 정부가 초기부터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정책 실패를 인정해 몸을 보다 낮추지 못한 데는 국민과의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한 총리가 사과한 날 국회의장 주최 만찬에서 "게임산업 육성문제, 그에 따른 규제 완화, 불법도박풍조, 이에 대한 대처문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엉켜 있어서 원인과 책임소재를 바로 분명하게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틀린 얘기는 아니며, 무차별적 공세에 그냥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접근이 다시금 국민의 감성을 먼저 이해하기보다 진정성과 순수함을 앞세워 설득부터 하려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상소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할 의무보다 말할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이다.

상소는 민주사회에서도 말하기와 듣기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한다. 말하는 쪽은 대개 말할 권리를 갖고, 따라서 특권을 누리는 자들이며, 같은 맥락에서 듣는다는 것은 명령을 듣고 그 명령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는 정부에 말을 하는 권리보다는 의무를 갖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동체를 매혹시킬 수 있는, 빈 말이 아닌 의미있는 말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반대로 국민들은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의무가 아니라 듣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게 상소의 판단이다.

지도자들이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번지레한 말들을 멈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듣지 않을 권리'를 되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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