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당당한부자]김민자 - 최불암 부부

연기자 커플로 김민자씨(사진 왼쪽)와 남편 최불암씨는 희망을 낳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TV와 영화를 통해 꿈을 현실화해 대리만족을 줬다면 현재는 많은 이들의 마음에서 사랑을 뽑아내고 있다. 김씨는 청각장애우들을 돕기 위해 뛰고 있고 최씨도 청소년운동, 복지재단 활동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60년대 중반부터 연극과 TV드라마를 통해 사랑을 받아온 최씨는 85년부터 맡아온 한국복지재단전국후원회 회장직을 아직도 맡고 있다.
2002년 월드컵에 대비해 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을 홍보하는 시민단체 ‘웰컴 투 코리아’의 회장일과 한국어린이재단 같은 사회봉사로 더 분주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또 그는 스리랑카, 에디오피아 등에서 구호활동을 펼쳤다.
한국방정환재단 위원, Hi서울 시민대표 등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달려갔다.
김씨는 80년대 중반부터 남편인 최씨와 한국복지재단일 등 봉사활동을 같이 해 왔지만 2000년대부터는 사랑의 달팽이 활동으로 장애우 지원에 헌신하고 있다.
8일 행사에서도 최불암씨는 자리를 같이 했지만 “이날 행사의 주빈은 아내지 내가 아니다”라며 계속 연주회 등 행사 뒷자리를 지켰다. 실제로 60 ~ 70년대에도 김 회장이 최불암씨의 앞자리를 차지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20여년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김씨는 대상을 받은 적(16회 대상)이 있지만 최씨는 최우수연기상(14회)에 그쳤던 것.
또 최불암씨의 어머니이자 김 회장의 시어머니인 고 이명숙 여사(86년 작고)도 또다른 의미의 부자였다. 이 여사는 명동에서 문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던 주점 '은성'을 운영하며 이봉구, 김수영, 전혜린,박재삼 등 문인들에게 상상력과 낭만, 여유의 공간을 제공했다. 은성은 통나무의자에 사기그릇 대포잔, 담배연기로 꽉 찬 허름한 곳이었지만 당시 내로라하던 문사와 예술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
명동의 은성에서 김수영 시인은 시상을 기다듬었고 작곡가 윤용하는 가곡 ‘보리밭’을 구상했다고 전해진다. 60년대 대학생 김지하가 기성문단과 일부작가의 허무주의·허구성·소시민적 속성을 질타하면서 자기세계를 구축해나간 곳도 은성이었다.
김민자-최불암 부부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인.예술인과 독자, 시청자는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또다른 방식으로 갚고 있다. 그들이 진정한 부자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