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을 다녀왔다. 참여정부 마지막 절반을 청와대 출입기자로 지냈으니 도리였다. 봉하 가는 길은 멀었다. 기차 타는 시간만 3시간10여분이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진영공설운동장에 내려 또 빈소까지 30여분을 걸어야 했다.
빈소로 가는 길은 물을 필요도 없었다. 엄청난 인파에 묻혀 그저 앞사람만 따라가면 어느덧 조문하려는 사람들이 서서 기다리는 줄에 다다랐다. 60여명씩 한꺼번에 조문을 하는데도 1시간 이상 서서 기다려야 했다.
짧은 조문을 끝내고 참여정부 사람들과 천막 안 돗자리에 앉았다. 먹먹한 마음에 하릴없이 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언제 마지막으로 뵈었나요?"
"실은 한달 이상 찾아 뵙지를 못했어요. 검찰 수사가 시작되고 나서는 기자들이 봉하마을을 빙 둘러싸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데, 우리가 방문하면 무슨 대책회의 한다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고 하니 통 올 수가 있어야지요. 그게 너무 가슴 아픕니다."
아, 생각난다. 지난 4월10일인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하자 노 전 대통령 측의 검찰 수사 대책회의니, 입맞추기니 하는 기사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며칠 뒤엔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앞뜰 화단에 나온 모습이 공개됐고 권양숙 여사가 평상복을 입고 사저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사진도 찍혔다.
그리고 4월21일, 노 전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라고 호소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글에서 "아이들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아무도 올 수가 없다"며 "신문에, 방송에 대문짝만하게 나올 사진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저의 불찰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불평할 처지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옛 청와대 수석은 한탄했다. "진작에 살아 있을 때 좀 도와주지, 지금 와서 이러면 무슨 소용이 있나." 그의 손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한 진보성향 주간지의 호외가 들려 있었다. "일할 땐 가짜 진보라고, 잘못된 진보를 해서 진보세력 다 죽인다고 그렇게 비판을 하더니, 그렇게 고인 가슴을 아프게 하더니…."
밤 11시20분쯤 빈소를 떠났다. 조문객 한 분이 마산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차를 태워주기로 했다. 차가 세워져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봉하를 빠져나가는 사람보다 그 시간에 봉하로 밀려드는 사람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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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태워주기로 한 분이 문득 물었다. "언론에 계신다고요." "네." "그러면 고인 죽음에 언론 책임이 크다는 얘기가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언론이라뇨. 검찰 책임이겠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쑥 내려갔다. 그렇구나. 언론 책임이구나. 권양숙 여사가 1억원짜리 시계를 선물 받고 논두렁에 버렸다고 보도한 게 언론이구나.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분을 희화화하고 구차하게 만든 게 언론이구나.
진영공설운동장까지 이어진 길 양편엔 조문객들이 하나씩, 둘씩 세워놓은 촛불의 물결이 바람에 흔들리며 희미하게 빛났다. 촛불을 따라 차까지 걸어가는 길은 황망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영원한 이별이라는 영결, 그 영정 앞에 언론에 몸 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반성문을 바친다. 그리고 세상 떠나는 마지막 길, 시 한 구절을 드린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에서도 쫓기어 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중략)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눈물의 왕-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