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현실이 된 '탈세드라마'

[기자수첩]현실이 된 '탈세드라마'

전혜영 기자
2010.05.25 17:24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해외로 돈을 빼돌리는 데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가 빠지지 않는다. 스케일이 좀 있다하는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계좌에 숨겨둔 거액을 놓고 목숨을 건 첩보전을 펼치기도 하고, 한바탕 사기극을 벌이기도 한다. 한데 국내 고액자산가들이 스위스은행의 비밀계좌를 이용해 한편의 '탈세 드라마'를 찍다가 적발됐다.

역외탈세를 막기 위해 '역외탈세추적전담센터'를 가동 중인 국세청은 최근 탈루혐의자들을 집중 조사한 끝에 4개 국내기업이 6000억 원대의 탈루를 저지른 것을 잡아냈다. 이들이 납부한 세금만 해도 3000억 원 규모다.

이들은 해외로 재산을 은닉하기 위해 스위스·홍콩·싱가포르 등에 다수의 비밀계좌를 개설했다. 국세청이 열어본 한 탈루혐의자의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에서 발견된 잔액만 1500억 원에 달한다. 그야말로 '억'소리 나는 규모다.

문제는 유사한 사례가 지금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국세청이 해외와 공조해 비밀계좌를 확인한 것은 세무조사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무수한 비밀계좌를 통해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 해외로 빠져나갔을지 모를 일이다.

국세청은 올해를 숨은 세원 양성의 원년으로 삼고 역외탈세 근절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해외에서 부동산 등을 편법취득하고 세금을 내지 않은 42명을 적발해 300억 원대의 세금을 추징하기도 했다.

이번에 또 엄청난 규모의 조세포탈이 확인되면서 국세청은 계속 조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역외 탈세는 국부유출뿐만 아니라 서민들에게 주는 박탈감도 크기 때문에 끝까지 추적해서 과세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태스크포스(TF) 형태로 운영해 오던 역외탈세추적전담센터를 상설조직으로 전환하고, 해외금융계좌신고제 도입이나 해외정보수집요원파견제 신설 등 제도적인 보완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해외로 줄줄이 새나가는 '통 큰 탈세'를 잡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추징은 늘 탈세를 뒤따를 수밖에 없다. 탈세자들을 잡아내 세금을 받아내는 것 못지않게 사전에 불법자금이 유출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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