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국가재정(下)]지금이 재정규율 확립할 적기..강력한 '재정준칙' 도입해야
"재정건전성 만큼은 치료가 정책적 대안이 아니다. 예방이 최선이다."
'재정의 300 전사'를 자처하고 있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그는 "유럽과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한 조치는 정치적 부담으로 위기상황에서조차 쉽게 합의되기 어렵다"며 예방을 강조했다.
박 장관 지적처럼 재정적자, 국가부채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늘어나면 이를 원상회복시키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중남미 국가들은 1980년대 초 발생한 외채위기를 벗어나는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일본은 1990년대 초 버블 붕괴로 인한 재정 악화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재정지출을 통해 각종 혜택을 받던 계층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에 지출 축소는 사회적 소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재정파탄으로 국가부도 직전까지 갔던 그리스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난 3월 영국에서는 2003년 이라크 반전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긴축정책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재정은 건전할 때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이동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2020년 이후에는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재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될 것"이라며 "재정 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할 향후 5~10년이 재정 규율을 강화할 적기"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재정준칙이란 재정지출, 재정수지, 국가채무 등 총량적인 재정지표에 대해 구체적인 목표치를 정하고 이를 법제화하는 것이다. 가령 '매년 재정적자를 GDP의 몇% 이내로 관리해야 한다'거나 '언제까지 국가채무를 몇%로 낮춘다' 등의 원칙을 법에 정하는 방식이다.
정부도 나름대로의 재정규율을 갖고 있다. 정부는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늘어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낮추기 위해 2013년 균형재정 달성 때까지 매년 지출 증가율을 세입 증가율보다 2~3% 낮게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 예산도 이 기준에 따라 마련하고 있다.
또 장기적인 준칙으로 페이고(PAYGO)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페이고는 새로운 입법시 이에 상응하는 세입 증가나 법정지출 감소 등 재원조달 방안을 마련토록 하는 것이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두 가지의 원칙은 강력한 재정 규율로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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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우리나라는 국회가 정부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예산의 각 항을 증액하거나 새로 추가할 수 없도록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국회의 무리한 지출 확대를 막을 수단도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이 좀 더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 도입을 강조하는 이유는 정부의지가 강력해도 여러 정치상황에 따라 흔들릴 가능성 때문이다. 특히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이 남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재정준칙 법제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 교수는 지난달 열린 극가재정운용계획 토론회에서 "복지 등 최근의 재정지출 요구와 내년 선거, 내후년 새 정부 출범 등을 고려하면 2013년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라며 "정치권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서 재정준칙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 정권에서 재정준칙 도입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아직까지 우리 재정이 위험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극복 이후 '재정건전화특별법' 도입 논의가 있었지만 위기를 벗어나면서 흐지부지됐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장은 "재정준칙을 빨리 만들수록 좋지만 정권 말기에는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가 당분간 방어적으로 재정지출 확대에 대응하더라도 다음 정권에서는 공감대를 형성해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