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국가재정(上)]2020년 위기 발생시 재정상황 가상 시나리오
2022년 7월. 영국 유력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 1면에 "한국, 국가채무에 빨간불 켜졌다"는 기사가 실렸다. 10년 전만 해도 세계적 모범사례였던 한국의 재정 건전성이 2020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60%에 육박하는 등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보도였다. FT 보도를 시작으로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이 해외 투자은행과 연구기관 분석을 인용, 한국의 재정악화를 앞 다퉈 보도했다.
당장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증시가 폭락하고 환율은 급등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이 나서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낮다'고 해명했지만 한번 돌아선 국제 금융시장의 인식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 대상에 올린다고 발표했다. 당장 실천 가능한 국가채무 감축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세계 금융시장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S&P의 경고에 한국물 채권금리가 치솟고 은행의 해외차입 자금줄이 막히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경험한 국민들은 국가부도 위기를 떠올리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정부는 결국 재정지출 축소를 통해 국가부채를 줄이겠다는 강도 높은 긴축안을 발표했다. 고교 무상교육, 대학 등록금 보조, 영유아 보육비 지원 등 각종 복지정책이 후퇴하면서 거리에선 연일 시위가 벌어졌다. '앞 세대가 남긴 부채 때문에 왜 등록금을 올려야 하느냐'며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섰고 노인수당 축소에 지팡이를 든 노인들까지 청와대로 향했다. 한국에서 10년 전 그리스발 국가재정 위기사태가 재현됐다는 외신 보도가 줄을 이었다.
언론은 지금의 문제가 10년 전인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잉태됐다고 분석했다. 당시 한국 사회에는 '무상', '반값' 이름을 단 각종 복지정책이 광풍처럼 휘몰아쳤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경제사령탑을 맡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스파르타의 300 전사'를 자처하며 포퓰리즘 정책에 맞섰다. 박 장관은 "포퓰리즘으로 선심성 재정지출을 확대하다가는 중남미, 남유럽, 일본처럼 재정파탄에 빠질 수 있다"고 호소했지만 선거를 앞둔 의원들의 막무가내식 요구를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2020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까지는 국가채무비율이 GDP 대비 45%로 양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미국을 제치고 최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를 뇌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다시 터진 것이 문제였다. 경기부양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은 결과 국가채무가 60%에 근접하면서 국가부도 위험국으로 분류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10년 후 금융위기가 닥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그려본 픽션(허구)이다. 하지만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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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국가채무 비율이 45%라는 가정부터 짚어보자. 조세연구원은 지난해 33.5%인 국가채무 비율이 2020년에는 42.6%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값등록금을 비롯해 최근 논의되고 있는 각종 복지 확대, 통일비용 등은 빠졌다. 보고서를 작성한 박형수 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장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숫자"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20년 국가부채를 52.8%로 추정했다.
2020년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도 허튼 소리가 아니다. 진원지가 중국이 아닐 수 있지만 세계적 차원의 금융위기가 10여 년을 주기로 재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불과 2년 만에 국가채무가 15%포인트 급증할 것이라는 가정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외환위기 당시 3년간 84.7%,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31.3% 등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동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반적으로 국가채무가 GDP의 60%를 넘으면 채무 누적이 빨라져 시장에서 위험 국가로 인식한다"며 "10년 후 재정위기 가능성은 현실화될 수 있는 시나리오"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부터 재정건전성 회복 노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2020년 이후 급속한 노령화로 재정이 급격히 악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