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안 지키면 '아웃' vs 약속한 적 없다..합의는 어디 갔나요

공정거래위원회와 대형 유통업체 간의 판매 수수료 인하 '전투' 2라운드 공이 울렸다. 공정위의 선공으로 시작된 이번 라운드는 초반부터 불꽃이 튀고 있다. 초반 분위기만 본다면 2라운드는 본격적인 난타전이 될 공산이 크다.
첫 펀치를 날린 건 공정위다. 백화점, 마트, TV홈쇼핑 등 11개 대형 유통업체들의 판매 수수료 인하 이행 점검 결과를 공개하고 지금까지의 수수료 인하가 보여주기 위한 숫자 채우기에 불과했다고 꼬집었다. 제대로 판매 수수료 인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업체에 대해 현장조사에 나서겠다고 엄포도 놨다.
유통업체들은 먼저 약속을 어긴 것은 공정위라고 맞받았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운영이 어려운 소규모 납품업체를 먼저 수수료 인하 대상에 올리기로 한 것은 공정위와 얘기를 마친 부분인데 (공정위가) 실적을 포장하기 위해 일부러 꼬투리를 잡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발 더 나아가 공정위가 일방적으로 목표량을 정해놓고 따라오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란 식으로 판매 수수료 인하 문제를 대결 양상으로 끌고 가고 있다고 볼 멘 소리까지 냈다.
누구 말이 맞든지 간에 양쪽 모두 페어플레이는 아니다. 이번 판매 수수료 인하는 강제 규정이 아니다. 최고 50%를 웃도는 수수료가 중소 납품업체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업계 내부에서도 이를 수긍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공정위 중재 하에 업계 스스로 합의한 내용이다. 이제 와서 옆구리를 찔리고 등을 떠밀렸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근본적인 합의 취지마저 부정하는 꼴이 된다.
공정위와 업계 사이엔 합의나 자율규제에 대한 시각 차가 분명히 존재한다. 공정위는 불공정 관행의 근본적인 극복을 위해선 업계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자율규제 형태로 시장에 뿌리내리게 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반면 업계는 자율규제 의의엔 동의하지만 이행방법이나 속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기본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신의 잣대로만 서로 깎아내리기에 급급하다면 합의나 자율규제의 원래 의미마저 퇴색할 수밖에 없다. 합의를 지키지 않으면 때리겠다는 공정위, 이제 와서 합의는 허울뿐이지 실상은 강제라는 유통업체, 한번쯤 합의란 말의 사전적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