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美 '조종사 과실' 암시, '가이드라인' 둔갑우려

[현장+]美 '조종사 과실' 암시, '가이드라인' 둔갑우려

세종=김지산 기자
2013.07.09 11:36

[아시아나 美 사고]NTSB 일방적 발표에 정부는 원칙고수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의장이 (언론) 발표 전 우리측에 '이런 내용 발표할 것이다'라고 통보해왔다"

9일 오전 최정호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이 브리핑 중 언급한 내용이다. 미국 정부의 사고조사 발표 태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최 실장은 이렇게 답했다. 그는 한·미가 사고조사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가 사고 원인을 조종사 과실로 유추할 수밖에 없는 내용을 발표하기 전 우리 정부에 '통보' 해온 게 '상호 협조'의 사례라고 제시한 것이다.

지난 이틀간 미국 정부 발표는 아시아나항공 사고 원인을 '조종사 과실'로 결론내린 듯한 인상을 주기 충분하다.

조사 이틀째인 8일(현지시간) 발표가 압권이다. NTSB는 충돌 82초전 사고기 고도1600피트 상공에서 조종사들이 자동항법장치를 껐다는 상황에서 시작해 마치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듯 중계를 했다. 충돌 73초전, 54초전, 34초전, 16초전, 8초전, 4초전, 3초전, 1.5초전까지. 각각의 시간대에 고도와 시속을 파노라마로 열거한다.

결론은 시간대별 고도와 속도가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각의 시간대는 조종사 과실 또는 미숙에 의한 사고의 증거처럼 등장한다. 미국 언론은 조종사 과실을 직접 언급하기 시작했다.

비행자료기록장치(FDR), 일명 '블랙박스' 해독을 시작한 지 이틀밖에 안됐다. 그런데 여기서 사고 당시 조종간 정보들이 쏟아진다. 우리 정부가 전기적 신호를 해독한 뒤 앞뒤 정황 다 대입해보는 데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린다고 했던 그 블랙박스다.

사고발생국가가 조사를 주도한다고 하지만 양쪽 정부의 태도가 너무 다르다. 정부는 사고 조종사 면담 내용 등 사고 현장 조사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다. 조사 내용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최정호 항공정책실장은 "블랙박스 해독에 몇 개월이 걸리고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내용공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리가 있다. 중간 중간 조사 내용이 공개되면 내용 하나하나에 따라 여론이 형성되고 여론은 마치 진실로 둔갑할 수 있다. 여론의 향배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갈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나중에 진실을 접한다 해도 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음모론이 판을 치게 된다. 사회적 비용 낭비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점에서 사고 조사 초기부터 미국 정부의 태도는 국제적 상식에 맞지 않다. 블랙박스 안에 포함돼 있을 다양한 내용들 중 조종사 과실로 유추될만한 정황들만 쏙쏙 골라 발표하는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부는 미국측 발표가 블랙박스 해독에 기반한 것이어서 '팩트' 자체의 신뢰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 뿐이다.

기자들은 미국 정부가 연일 내놓는 '특정 방향으로만 유추 가능한' 내용뿐 아니라 블랙박스 내 존재 가능한 다양한 정황들을 정부가 제공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NTSB에만 의존하다보면 진실이 무엇이든 해석이 한 방향으로 모아질 것을 우려해서다.

NTSB가 지금과 같은 발표 행태를 이어간다고 해도 정부 입장이 바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려되는 건 NTSB 발표 내용을 정부가 확인해주는 정도에 그친다면 미국발 발표내용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9일 오전 국토부 소속 블랙박스 해독 전문가와 아시아나항공 소속 B777 베테랑 기장 등 2명을 블랙박스 해독에 참여하러 워싱턴으로 떠난다. 한·미 조사단 내에서 이들이 내놓을 견해와 주장은 NTSB의 발표에 녹아들게 된다. 우리 조사단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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