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봉법 후폭풍, 물류망 타격](상)

노동자의 법적 권리 확대에 대한 기대와 사용자의 현실적 수용 거부, 정부의 소극적 대응이 만들어낸 간극이 CU사태를 초래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안착하지 못한 법적 기준과 이를 둘러싼 노사 간의 극심한 온도차 등 법시행 과도기가 만든 '구조적 참사'란 지적이다.
최근 화물연대 편의점지부 CU지회는 '주 70시간 노동 철폐'와 '원청인 BGF리테일과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경남 진주센터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이 대체 수송 차량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됐으나 현장의 노사 관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과도기적 공백'이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노란봉투법이 명시한 '사용자 정의의 확대'다. 화물연대는 이 법을 근거로 하청업체인 BGF로지스가 아닌 실질적인 결정권을 쥔 원청 BGF리테일에 직접 교섭을 요구했다. 반면 사측은 직접적인 계약 관계 부재를 이유로 교섭을 거부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과거엔 원청 대상 파업이 불법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아 동력이 약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노동계는 이를 정당한 권리 행사로 인식하며 투쟁 수위를 높여왔다. 법적 보호막이 강화됐다는 기대감이 이번 농성의 계기로 작용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노란봉투법의 범위를 넘어선 상황"이라며 선을 그었다. 고용노동부는 "소상공인과 개인사업자 등 취약 지위에 있는 이들이 단결해 대화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지 못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화물연대가 설립신고를 마친 '법적 노조'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노란봉투법상의 원·하청 관계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인식이다. 화물연대는 노동위원회에 이의 신청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조계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화물연대의 법외노조 논란과 별개로 그 구성원이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원청인 BGF리테일이 운송료와 배차 시스템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면 노란봉투법에 따른 교섭 의무가 발생한다는 것이 개정법의 핵심 취지란 지적이 나온다.
노란봉투법의 모태가 된 판정에서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대법원 역시 학습지 교사나 택배기사를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며 소득의 의존성, 업무 내용의 결정권, 지속적 결속력 등을 주요 기준으로 제시했다. 편의점 물류의 특성상 특정 기업에 전속된 화물차주들에게도 이 논리가 적용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반면 학계에선 이번 사안을 노란봉투법과 직접 연계하는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화물연대가 노동위원회에 이의 신청 자체를 하지 않았으므로 해당 사안을 노란봉투법과 직접 연결 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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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다만 "노란봉투법이 이러한 사례들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잡고 결정해줘야 현장의 혼선을 막을 수 있다"며 "향후 보완 입법 시에는 보다 분명한 입장을 제시해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법 시행 초기 정부의 선제적 대응과 중재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노동부는 노동지청을 통해 양측을 중재해 왔으나 "화물연대가 법내 노조가 아니어서 정식 교섭 절차를 밟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과도기적 혼돈이 부른 참사다. 새로운 법 질서가 현장에 연착륙하기까지 노사정 모두의 정교한 해법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CU 물류 거점 봉쇄 파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들이 주장하는 원청 교섭 요구의 '적법성'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번 사태는 노사 갈등을 넘어 '누가 사용자냐'는 법적 판단과 함께 집단행동의 절차와 방식 전반이 법적 기준을 충족했는지 관건이 될 전망이다.
21일 경찰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일 오전 10시30분경 경남 진주시 정촌면 소재 CU 물류센터 앞에서 2.5t 탑차가 집회에 참여한 조합원 3명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50대 남성이 숨졌고, 나머지 1명은 중상, 1명은 경상을 입었다.
시위가 장기화화면서 본사와 가맹점의 손실도 늘어나고 있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지난 5일부 터 2주 넘게 안성·나주·진주 등 거점 물류센터 3곳 출입구를 봉쇄했고 지난 17일부터 충북 진천 BGF푸드 공장 진출입로를 차단했다.
이에 따라 CU의 전국 1만8000여개 점포에 물품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으며, 특히 2000여개 가맹점은 김밥·도시락·샌드위치 등 간편식 공급이 사실상 끊겼다. 매일 약 15만개 간편식을 만들었던 푸드 공장은 지난 17일부터 5일째 가동이 중단됐다. 편의점 유통 사업의 핵심인 물류망을 직접 겨냥한 집단행동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커졌다.
쟁점의 출발점은 원청 교섭 요구다. 화물연대는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과 물류 자회사 BGF로지스가 운송 구조와 비용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회사 측은 운송기사들과의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없다는 점을 들어 사용자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법 적용 이전 단계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됐는지를 둘러싼 문제도 제기된다. 노란봉투법은 원청의 교섭 책임을 인정하기 위해 '실질적 지배력'에 대한 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노동위원회를 통한 사용자성 인정 절차가 필요하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이번 사안에서는 이러한 절차 없이 원청 교섭 요구와 집단행동이 동시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법 적용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집단행동 방식 역시 위법성 논란의 핵심이다. 화물연대는 물류센터와 생산시설 출입을 차단하고, 정상적으로 운행하려는 차량까지 막는 위법적인 행태로 원청사를 압박했다. 이를 두고 단순한 '노동 제공 거부'가 아니라 물류 흐름 자체를 차단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업무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제조공장까지 봉쇄 범위를 넓힌 건 기존 파업 방식보다 한층 수위가 높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이번 사안을 노란봉투법과 분리해 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사안은 노란봉투법상 원·하청 교섭 문제를 넘어선 상황"이라고 밝히며 법 적용과의 직접적 연관성을 부인했다. 사용자성 판단 절차가 선행되지 않은 점과 집단행동 양상이 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정치권 역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민석 총리는 사망사고와 관련해 대화를 통한 해결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여야 모두 이번 사안을 특정 법률 문제로 단정하기보다는 상황 관리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다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우 의원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은 원청이 실질적으로 노동조건을 지배하면서도 교섭을 거부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노란봉투법 취지에 비춰볼 때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할 여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원청의 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정부의 철저한 조사와 책임 규명을 촉구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안이 노란봉투법 적용 여부와 별도로 기존 법 체계에서도 위법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병택 법무법인 창천변호사는 "파업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제공을 거부하는 형태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번처럼 물류를 전면 차단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위법 소지가 있다"며 "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과 노동위원회에 사용자성 판단을 구하는 절차를 밟지 않은 점까지 고려하면 절차와 방식 모두에서 위법성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