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자 4·16" - '안전이 복지다' <1부>"안전은 투자다"]<2-1>전기요금, 비용아닌 투자로 인식해야...

# 평소보다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난 아침. 전력거래소는 한전 발전 자회사에 발전기 가동을 추가로 요청했다. 늦더위로 오전부터 푹푹 찌는 날씨 탓에 예비전력은 400만kW 아래로 떨어졌다. 오후들어 관심단계가 발령되더니, 결국 1시간 후엔 최고 단계인 심각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때 예비전력은 24만kW. 자칫 전국이 정전되는 블랙아웃(Black out)에 빠질 뻔 했다.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등 전력당국의 공조 작업은 이미 늦은 상태였다. 사상 처음 겪는 일이라 전력당국 관계자들이 우왕좌왕했다.
전국 13개 지역 한전 급전소는 전력거래소 요청에 따라 순차적으로 단전을 실시했다. 전체 전력계통이 블랙아웃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때부터 난리가 났다. 교통 신호등이 꺼지고, 아파트와 건물 엘리베이터가 멈춰서고, 병원 응급실에 전기가 나가는 등 영화에서만 보던 일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 전력 수요가 줄어든 오후 8시까지 4시간45분 동안 400만8000kW 규모의 정전이 있었다. 정전된 가구만 약 753만가구에 이르는 등 620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자칫 전국이 암흑 세계에 빠질 뻔했다.
지난 2011년 9월15일 발생한 정전사태의 긴박했던 모습니다. 당시 정전사태의 원인은 늦더위와 수요예측 실패로 지목됐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값싼 전기'였다. 원가보상률(전기 100원어치 팔았을 때 받는 돈)이 86.8원에 불과한 탓에 기업과 가정에선 전기를 함부로 소비했고, 한전은 팔면 팔수록 손해를 입었다. 우리가 전기요금을 비용으로만 생각한 탓에 '안전'이 뒤로 밀린 대표적 사례다.
해마다 수조원의 적자가 쌓인 한전은 김쌍수 전 사장(2008년8월~2011년8월)과 김중겸 전 사장(2011년9월~2012년11월) 시절 비용절감을 모든 정책의 우선순위에 뒀다. 전력업계에선 이때 노후전선 교체와 오래된 변압기 교환 등의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2009년 김쌍수 전 사장이 도입한 '헬스인덱스(Health Index)' 사업이 대표적이다. 헬스인덱스는 전봇대나 지상에 설치한 지 13년이 지나면 교체하는 변압기 교체기준을 변압기 상태를 평가해 교체여부를 판단하는 제도로 연간 수백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었다.
한전에 따르면 2009년 11월 헬스인덱스를 시행한 결과 2010년 변압기 교체수량이 이전에 비해 45%, 교체비용도 39% 감소했다. 실제 2007~2009년 연평균 3만5240대 변압기 교체에 990억원이 투입된 반면, 2010년엔 1만3815대(390억원)로 예년에 비해 수량과 비용이 확 줄었다. 이 제도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이러다보니 20~30년 된 노후 변압기도 아직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한전 관계자는 "헬스인덱스는 비용과 교체수량을 줄이는 게 목적이 아니고 변압기를 효율적으로 안전하게 운영하는 게 핵심이다"며 "자동차의 가치를 연식보다 운행 거리로 판단하는 것처럼 변압기도 수명보다 상태를 분석해 판단하는 제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기 전문가들은 안전 사고를 우려한다. 전기업계 관계자는 "헬스인덱스 제도는 상태가 좋아보이면 최대 30년까지 사용할 수 있어 기존 수명 보다 2배가 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며 "13년을 기준으로 잡은 것은 그동안 안전에 대한 경험과 통계 등을 고려해 만든 것인데, 이 기준을 넘기면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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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값싼 전기요금은 정전사태란 국민적 트라우마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전기안전 사고 위험을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2004년 825만kW를 차지했던 난방 전력수요는 지난해 기준 2000만kW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전체 전력 부하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아졌다. 하지만 전기 난방기기의 에너지 효율은 등유, 가스 등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낮다. 전기는 가스나 유류 같은 발전 연료를 연소시켜 만드는데, 전력망을 통해 전달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발생한다. 전기 난방의 에너지 효율은 34%로 등유난방(80%), 가스난방(85%)에 비해 매우 낮다. 그럼에도 2012년 전기 사용량은 2004년보다 40% 증가한 반면 등유 사용은 57% 감소했다. 2004년 이후 2012년까지 등유 가격이 60% 오르는 동안 전기요금은 30% 오르는데 그친 탓이다. 결국 전기 요금이 저렴하기 때문에 과소비를 하는 것이다. 전력 판매수입을 전력판매량으로 나눈 종합 판매단가를 기준으로 할 때 2011년 우리나라의 1KWh당 전기요금은 90.32원으로 △일본 249.8원 △영국 176.83원 △프랑스 149.71원 △미국 115.21원 등에 비해 1.4∼2.4배 저렴했다.
또 값싼 전기요금으로 매년 수조원의 적자를 보는 한전이 시설 안전 등에 예산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 곳곳엔 노후전선과 오래된 변압기 등이 설치돼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데, 결국 저렴한 전기요금이 한 원인이란 얘기다. 실제 해마다 발생하는 화재사고의 상당 부문은 전기로 인한 화재다. 지난해 전체 화재사고 4만932건 중 8889건(21.7%)이 전기로 인한 화재였는데, 이중 노후전선의 합선과 누전·접촉불량 등이 원인인 '안전불감증'에 따른 인재(人災)가 많았다.
전력당국은 지난해 두차례에 걸쳐 이뤄진 전기요금 인상이 전력수급 안정과 전기안전에 큰 기여를 할거라고 본다. 한전은 조환익 사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 1월 4%, 10개월 후인 11월엔 5.4%의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원가보상률도 95%로 크게 상승, 안전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 있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원전 1기 건설에 3조원, 화력발전소는 1조3000억 원, LNG는 6000억 원의 막대한 건설비용이 발생 한다"며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전력 사용량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돼 발전소 추가 건설을 위한 비용도 줄일 수 있고, 전기안전을 위한 투자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