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무원, 결국은 창업?

[기자수첩]공무원, 결국은 창업?

세종=정진우 기자
2014.06.26 18:17

25일 정부세종청사 한 경제부처 사무실.

안전행정부가 공무원 취업을 제한하는 영리 민간기업 1만3466곳을 고시하자 장탄식이 쏟아졌다. 제한 대상이 기존 3960곳에서 3배 이상으로 대폭 늘었다.

공무원들은 퇴직 후 뭘 먹고 살야야 할 지 고민들을 털어놨다.

한 공무원이 "우리도 이제 타일 붙이는 기술이나 도배, 보일러 관련 자격증을 준비해야한다"고 하자, 옆에 있던 공무원은 "그래봤자 어차피 나중엔 모두 치킨집에서 모일 수도 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부처 분위기도 마찬가지. 한 고위관료는 "취업제한 리스트를 천천히 살펴봤다"며 "결국 창업밖에 길이 없는 것 같다"고 허탈해했다.

관가가 충격에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불거진 공직 사회의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를 척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자 이들의 재취업 제한으로 불똥이 튀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 17조에 따르면 4급 이상 공무원(일반직 기준)이 퇴직 전 5년간 몸담았던 부서 업무와 연관된 일정 규모 이상의 영리기업에는 퇴직 뒤 2년간 취업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앞서 정부는 취업 제한기간을 현재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퇴직 공무원의 업무 관련성 적용 범위를 소속 부서에서 기관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지난 17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23일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퇴직 공무원들은 퇴직 후 3년간 소속 기관과 업무 연관이 있는 1만3466곳의 민간기업(자본금 10억원, 매출 100억원)에 사실상 취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번 대책으로 또 다른 '마피아'나 '낙하산'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거다. 퇴직 공무원의 민간 기업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그 자리를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들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심지어 능력이 검증 안 된 비전문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도 정치인이나 권력 실세들의 측근들이 공공연하게 상당수 공공기관 주요 보직에 앉아 있는 게 현실이다.

일각에선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획일적 잣대로 무차별하게 재취업을 제한하는 건 이들이 30년 안팎의 공직생활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사장시킬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이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전문가가 됐다면, 그 경험과 노하우를 적법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게 합리적이지 재취업을 막는게 능사가 아니란 얘기다. "능력 있는 공무원들이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하는 길을 막는다면, 앞으로 관료들은 일을 열심히 하기보다 오랜기간 자리만 지키기 위해 아예 복지부동해질 수밖에 없다"는 전직 관료의 지적이 현실로 나타날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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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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