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베니스 상인은 법정이자율?…저금리의 경제학

현대판 베니스 상인은 법정이자율?…저금리의 경제학

김태형 기자
2015.09.12 08:00

[같은생각 다른느낌]저금리시대 상대적으로 높아진 법정이자율에 대한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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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 최근 금전문제로 민사소송에 휘말린 채무자 A씨는 소송결과가 나온 후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채권자가 요구한 과도한 금액이 판결에서 인정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지만 채무금액에 따른 법정이자율이 시장금리보다 최대 10배 이상 된다는 점을 알게 된 후 허탈해졌다.

A씨가 지급해야 할 법정이자는 채권발생일부터 소장송달일까지 연 5%의 이자율로 계산된다. 그러나 소장송달일에 채무금액과 그동안에 발생한 이자를 전부 변제하지 못하면 그 다음날부터 채무변제일까지 연 20%의 고이율로 지연손해금을 내야 한다. 요즘 은행의 정기예금금리가 고작 1%대인 점을 고려하면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처음에는 채권자가 소송을 질질 끄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여겼으나 판결이 나고서야 뒤늦게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어차피 받을 돈이면 은행에 맡기느니 더 높은 법정이자율로 돌려 받으려는 속셈이었다.

A씨는 소송 시작 후 기간이 꽤 지난데다 지금 당장은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을 만한 처지도 아니어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을 고려 중이다. 그래도 법정 지연손해금 20%보다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A씨의 사례는 저금리 상황으로 인해 법정이자율이 시장금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 뜻하지 않게 발생한 새로운 풍속도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높아진 법정이자율에 대해 폭리와 다름없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단지 시장금리가 내려갔다는 이유만으로 더 많은 징벌적 벌금을 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요즘같은 저성장 저금리시대에 고리 대부업자는 베니스 상인이 아니라 법정이자율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1960년대 한때 25%를 상회했던 시장금리는 현재 정기예금금리 1.57%, 대출금리 3.43%로 크게 떨어졌다. 과거 고금리에 익숙해 있던 국민들은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금리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적다보니 예금으로 생활하는 이자생활자나 기금운용을 해야 하는 재단법인들은 비상이다. 은행보다 더 수익이 높은 곳을 찾아야 하는데 만만치 않다.

월세 목적의 상가나 오피스텔을 분양받거나 주가지수나 종목에 기초한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하면 연 4~6%정도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혹시라도 손해가 나면 노후대비로 준비한 자산이 위험해질까 두려워 금리가 낮아도 은행 정기예금만 고집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달한다.

이에 비해 법정이자율은 민사는 5%, 상사는 6%로 1958년 민법과 1962년 상법 개정 이후 50여년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A씨의 사례에서 보듯이 시장금리보다 훨씬 높아진 법정이자율로 이자를 갚아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대부업이나 제2금융권의 대출금리나 연체이자율도 상대적으로 높아져 실제로 느끼는 부담감은 더욱 커졌다. 하루만 늦어지게 되면 전화독촉까지 시달리니 이중의 고통이다.

대부업의 경우, 최근 9월3일자 김기식 의원의 국정감사 요구자료에 따르면 상위 10개의 대부업체를 조사한 결과 6월말 잔액기준 6.2조 원에 대출금리는 평균 35.3%에 달했다.

또한 카드사의 할부수수료율은 최고 21.9% 연체이자율은 최고 29.9%이며, 보험사의 대출 연체이자율은 최고 29.9%로 낮아진 시장금리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법정이자율이 높다고 채권자에게 항상 유리한 것만도 아니다. 미래에 받을 연금이나 배상금 등을 현재 일시불로 받을 때 오히려 불리한 경우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1년 후에 받을 1000만 원을 지금 현재에 미리 당겨서 일시불로 받을 경우 적용되는 할인율은 시장금리가 아닌 법정이자율이다. 이때 할인율이 높을수록 현재 수령하는 금액은 적어진다. 시장금리 1.57%로 할인하면 985만원을 수령하나 5% 법정이자율로 할인하면 현재 받을 금액이 952만원으로 약 33만원 정도 줄어든다.

기업도 높은 법정이자율에 대해 부담을 느끼기는 매한가지다. 세금 납부가 지연됐을 때 적용되는 납부불성실 가산세율은 2003년부터 연 10.95%로 고정돼 있다. 이에 반해 초과납부한 세금을 돌려받을 때 적용되는 국세환급가산금 이자율은 예금이자율에 연동돼 현재 연 2.5%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낮아진 시장금리에 비해 높아진 법정이자율에 대한 비난이 거세자 법무부는 소송촉진등에 관한특례법 시행령 개정안을 8월5일자로 입법예고해 현행 연 20%에 달하는 지연손해배상금을 15%로 인하하기로 했다.

대부업 최고금리도 현행 34.9%에서 29.9% 등으로 인하하는 발의안이 현재 정무위에 상정돼 있다. 대부업 최고금리가 5%만 하락해도 차입자들은 연간 약 4600억 원의 이자 절감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전경련에서도 지난 6월 기업의 세금납부와 관련해 가산세 제도 개선을 건의하고 나섰다.

최근 높은 법정금리 등을 낮추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해외 원유가격이 낮아져도 국내 주유 가격이 내리기까지 한참 시간이 걸리듯 법정이자율이 기업이나 가계의 불만을 잠재울 수준까지 내려가려면 한참 지나서야 가능할 것이다. 하루하루 달리 변동하는 시장금리와 달리 법정이자율 조정은 법규와 금리체계를 검토하고 시행령을 바꿔야 하는 등 복잡하고 긴 절차를 거쳐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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