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자국 내 원전 프로젝트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을 완화하면서 우리나라의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로 원전 협력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K원전은 납기와 비용 등 경제성뿐 아니라 안보적 측면에서도 미국의 원전 프로젝트로 적합하다는 평가다.
미국도 인공지능(AI) 등 급격히 증가하는 전력 수요 대응을 위해 대규모 원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만큼 K원전 기업들이 수백조원에 달하는 미국 원전 시장에 진출할 기회가 열렸다는 분석이다.
9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지난 4월 연방관보에 공고한 외국인 소유·통제·지배(FOCD)에 관한 예외 규정이 지난 7일부터 발효됐다. 이는 외국인이 미국의 원전 프로젝트를 최대 100%까지 보유할 수 있는 규정이다. 대상국에는 한국 등 37개국이 포함됐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우리나라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 선정 앞선 사전적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과의 관세 협약에 따라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조선,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양국 간 산업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선정하기로 했는데 현재 미국의 전력 사정과 노후한 원전 시설 등을 감안하면 에너지와 원전 분야에서 협력이 유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미 투자 프로젝트로 신규 원전 건설사업이 추진될 경우 외국인 지분 투자 제한이 걸림돌이 될 수 있어 해당 규정을 완화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대미 투자는 한미전략투자기금을 통해 투자 특수목적회사(SPV)에 자금을 조달하고 개별 프로젝트 SPV로 자금이 전달되는 체계다. 직접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외국인 투자 제한을 완화해 원활한 사업 추진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포석이다.
원전이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로 거론되는 이유는 미국의 에너지 수요와 안보 등 복합적 요인에 있다. 미국은 현재 94기의 상업용 원전을 운영 중인데 평균 설비 연령이 40년을 상회하는 등 노후화가 상당히 진행됐다. 하지만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30여년 간 미국 내 신규 대형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서 미국 원전 생태계는 사실상 고사한 상태다.
AI 데이터센터 등으로 전력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데 이를 충족할만한 전력설비가 부족해지면서 미국은 자국 내 대규모 원전을 건설할 파트너가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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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원전 재가동을 선언하면서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를 착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투자회사 브룩필드, 우라늄 원료회사 카메코와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원자로 배치를 가속화하기 위한 800억달러(약 120조원) 규모의 투자 확약을 체결했다.
미국의 원전 10기 건설을 위한 파트너로는 한국이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한국 원전 산업의 가장 큰 장점은 적정 가격과 납기 준수다. 다른 나라의 대형 원전 건설 프로젝트가 빈번한 공기 지연과 공사비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을 비롯해 국내 여러 원전을 적기 시공한 경험이 풍부하다.
특히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자로 모형인 APR1400은 NRC 설계인증을 보유하고 있어 미국 내 신규 건설 시 추가 기술 심사 없이 건설허가를 신청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프랑스의 경우 NRC의 설계인증 심사가 중단된 상태다. 경쟁국 대비 우리나라 원전이 미국에서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안보적 측면에서도 강점이 있다. 현재 대형 원전 건설 기술을 갖고 있는 국가는 한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인데 이 중 중국과 러시아는 안보적 차원에서 미국 진출 가능성이 제한적이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입장에서 APR1400은 NRC 설계인증을 획득하고 국내 건설사들의 시공 경험이 뒷받침된 최적의 대안"이라며 "미국의 전력 안보와 국익을 동시에 충족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NRC의 조치가 30여개 국가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대형 원전보다는 소형모듈원자로(SMR)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대형 원전 기술을 가진 국가는 제한적이지만 SMR는 여러 국가에서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승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신규 대형 원전은 아직 전력구매 수요와 상업적 계약 구조가 뚜렷하지 않은 반면 SMR는 빅테크와 유틸리티 중심의 장기 전력구매계약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대미투자가 원전 분야로 이어진다면 대형 원전보다는 SMR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정부도 상업적 합리성 등에 근거해 대미 투자 선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한미전략투자법(대미투자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한미전략투자공사가 출범했고 한미전략투자사업관리위원회에서는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