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 때문에 좋아진 게 있다고?…전세난의 역설

전세난 때문에 좋아진 게 있다고?…전세난의 역설

최성근 기자
2016.03.23 07:30

[소프트 랜딩]전세난 해결에 관심 없는 정부

[편집자주] 복잡한 경제 이슈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모색해 봅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결혼 후 전세로 신혼집을 마련한 필자는 7년째 서울에서 세입자 신세를 못 벗어났다. 그래서 전세가 마감될 때마다 '미친 전셋값'이란 말을 실감하며 산다. 게다가 처음 얻었던 전셋집은 집주인의 대출까지 끼어있어 소위 '깡통전세' 걱정도 해야 했다.

새로 전셋집을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이지만 오르는 전세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 대출을 받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그 대출 원리금을 값느라 또 수년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월급은 수년간 정체된 상태에서 전셋값이 오르면서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었고 오른 전세비 마련을 위해 가계대출이 증가하면서 가계의 재무건전성도 악화됐다. 이렇듯 서울의 전셋값 상승은 무주택 서민들의 삶을 여러 면에서 팍팍하게 만드는 주범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의 극심한 전세난 때문에 좋아지는 것도 생겼단다. 먼저 전세난으로 서울의 인구가 분산되는 효과를 낳고 있다.

필자의 지인인 40대 P씨는 결혼 후 서울 마포구의 전셋집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지만 해마다 올라가는 전셋값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결혼 5년 만에 서울을 떠나 경기도 성남시로 이주했다.

실제로 P씨와 같이 서울의 높은 전셋값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낮으면서 출퇴근이 가능한 경기도 등지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경기도로 새로 유입된 인구 가운데 서울에서 이주한 인구 비중이 55.6%를 차지해 절반을 훨씬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3~5월 만기가 도래하는 아파트 전세는 3월 3만6361건, 4월 3만470건, 5월 2만8650건으로 이 중 서울의 전세 비중이 전체의 28%에 달한다. 따라서 앞으로 전세 계약 만료 시점이 도래하면 세입자들의 전세난이 가중되면서 서울에서 타지로 이주하는 '탈서울화'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의 주민등록 인구는 지난해 말 1002만여 명으로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작년 한해만 8만1000명이 줄어들어 2000년 이후 가장 많은 수의 인구가 줄었다.

서울시 인구는 지난해 월 평균 8400명씩 줄어들었는데 만약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 3월 중으로 인구 1000만 명 시대는 마감된다(☞관련기사: 서울시 인구 3월 중 1천만 시대 마감).

사실 서울시의 인구 과밀화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5년 우리나라 총인구 5153만 명 가운데 20%에 달하는 1000만 명의 인구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 이로 인해 교통 혼잡·주택 부족·교육 인프라 부족·환경 악화 등 다양한 문제들이 야기됐다.

오죽했으면 행정 수도를 건설해서 서울의 인구 과밀화 현상을 막고 행정기능을 분산하려 했겠는가? 하지만 세종시 건설 이후에도 다수의 공무원들이 출퇴근을 선택하는 바람에 인구 분산 기능은 기대했던 것보다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전세난으로 서울의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에서 세종으로의 인구 이동은 순 이동자 기준으로 2012~2015년 평균 3511명에 불과하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동한 순 인구수는 평균 9만9290명에 달했다. 인구 분산 효과만을 따져보면 전세난이 야기한 결과가 세종시를 건설한 것보다 몇 십배나 큰 효과를 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전세난이 가져온 정(正) 효과는 또 있다. 서울을 떠나 경기도 등지로 이주한 세입자들의 주거 환경과 삶의 질이 개선된 효과이다. P씨 부부도 성남시로 이주한 뒤 주변에 공원과 각종 여가시설도 많고,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됐다며 주거환경이나 삶에 대한 만족도가 이전보다 높아졌다고 밝혔다.

물론 서울로 출퇴근을 하면서 좀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하지만 성남시로 이주한 P씨 부부는 서울을 떠나기로 한 것이 잘한 결정이라 믿고 있다.

이렇듯 서울의 전세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듯 싶다. 전세난으로 서민들의 삶이 궁핍해지는 현실이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전세난이 가중될수록 과밀화된 서울 인구 문제도 해결되고 전출한 주민들의 삶의 질도 개선될 수 있다면 바람직한 현상 아니겠는가.

게다가 서울시의 인구가 줄어들면 언젠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전세가격도 안정화될 것이고 주택가격 역시 상승세를 멈추게 되지 않을까. 더불어 유치원이나 어린이 집 보내기 위한 경쟁도 좀 완화될 것이고, 서울의 교통난도 다소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일까? 가중되는 전세난 해결은 외면한 채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정책에만 몰입하는 정부를 보면 답답한 마음이 끝이 없다.

필자와 같은 무주택 세입자들에게는 전세난 때문에 오히려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고공행진을 지속하는 전셋값을 묶어둘 방책이나 사라지는 전세를 유지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에 울화통만 쌓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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